항목 ID | GC055008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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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卞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래업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369년 - 변계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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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30년 - 변계량 사망 |
본관 | 밀양 변씨 본관 - 경상남도 밀양시 |
입향지 | 밀양 변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 |
세거|집성지 | 밀양 변씨 세거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 |
성씨 시조 | 변고적 |
입향 시조 | 변계량 |
[정의]
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고 변계량(卞季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변씨(卞氏)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로 주(周)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조숙진탁(曺叔振鐸)의 후손이 변(卞)이라는 땅을 하사받고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초계 변씨(草溪卞氏)는 당(唐)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예부 상서(禮部尙書)을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8학사의 한 사람으로 『효경(孝經)』 등을 가지고 신라에 정착한 것이 시초라고 전하나, 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상계를 고증할 수 없다. 이후 고려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팔계군(八溪君)[팔계는 초계(草溪)의 옛 지명]에 봉해진 변정실(卞庭實)을 시조로 받들고 초계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변정실의 아들 대에 이르러 변광(卞光)을 파조로 하는 장파(長派), 변요(卞耀)을 파조로 하는 중파(仲派), 변휘(卞輝)을 파조로 하는 계파(季派)로 갈라졌다. 이후 장파는 연안공파(延安公派)·장흥공파(長興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제학공파(提學公派)·이조참판공파(吏曹參判公派)·우윤공파(右尹公派)로, 중파는 감무공파(監務公派)·춘헌공파(春軒公派)·춘당공파(春堂公派)·춘정공파(春亭公派)로, 계파는 찰방공파(察訪公派)·참봉공파(參奉公派)·중은공파(仲隱公派)·청사공파(靑蓑公派)·부사공파(府使公派)로 각각 나뉘었다.
변요의 손자 변고적(卞高迪)이 밀양(密陽)에 세거하면서 밀양 변씨(密陽卞氏)로 분적되었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초계와 밀양 외에도 세거지에 따라 원주(原州)·팔계(八溪)·진주(晉州)·청주(淸州)·경주(慶州)·장성(長城)·남원(南原) 등 44개로 분관되었으나 지금은 합보(合譜)하였다.
[입향 경위]
변계량[1369∼1430]이 밀양 초등면에서 풍각면 봉기리로 입향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입향 경위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초계 변씨 대동보에 따르면 13세손인 변좌(邊左)의 묘가 밀양 각남면 부곡산에 있는 것으로 보아 변계량의 증손 대에 청도로 이주하여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140가구 373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2년 현재 풍각면 봉기리에 약 4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 이 외에도 흑석 1리·남산리·학산 2리·수야리·신촌리·신지리·두곡리 등이 대표적인 밀양 변씨 집성촌이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