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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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安- |
영어공식명칭 | Nagan Keunjul danggigi(Folk Game) |
영어음역 | Nagan Keunjul danggigi(Folk Game) |
영어공식명칭 | Nagan Keunjul danggigi(Folk Gam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놀이 장소 | 낙안 큰줄당기기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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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놀이 |
노는 시기 |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 |
관련 의례 행사 | 동내리 당산제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서로 편을 나누어 볏짚으로 만든 줄을 당기며 놀았던 세시민속놀이.
[개설]
낙안 큰줄당기기는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각각 줄을 만들어서 줄을 당기며 함께 어울렸다. 과거 낙안읍성에 원님이 있을 때 원님이 보이는 낙민루 앞에서 줄을 당겼으나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낙안 큰줄당기기는 동내리 당산제와 함께 1년 중에서 가장 큰 행사였다고 한다.
[연원]
낙안 큰줄당기기 시기는 동내리 당산제가 끝나고 난 후인데, 정해진 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 정월 대보름 무렵 줄이 완성되면 날을 정해 줄당기기를 하게 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낙안 큰줄당기기를 하는 장소는 과거 원님이 있을 때는 낙민루 앞에서 원님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줄당기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인들이 기억하는 장소는 낙안면 동내리와 서내리가 나뉘는 삼거리이다. 삼거리는 현재 낙안읍성의 중심길인데, 이 길 가운데쯤 남문길을 경계로 삼아 양쪽에 암줄과 숫줄을 놓고 고를 걸었다고 한다. 낙안 큰줄당기기는 아이들이 장난삼아서 하는 ‘애기줄’로부터 시작된다.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초가지붕 이을 무렵에 10대 청소년들이 짚을 모아다가 줄을 만들어 줄당기기를 하게 되었다. 이어 조금 더 큰 청소년들이 합세하는 ‘중줄’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어른들이 주도하는 ‘큰줄’로 발전한다. 낙안큰줄당기기의 줄은 음력 정월 10일이 되면 꼬기 시작한다. 이때 인근 마을에 알려 세 가닥으로 꼰 작은 줄들을 갖고 오도록 한다. 순천시 낙안면을 동쪽·서쪽으로 나눠 각각 숫줄, 암줄을 ‘디리게’되는데, 동쪽의 동내리와 서쪽의 서내리, 남내리를 포함한 인근 마을에서 줄을 가져와 큰줄을 만들게 된다.
[놀이 방법]
낙안 큰줄당기기는 동편과 서편으로 편을 갈라서 하는데, 이는 줄을 꼴 때부터 구분된다. 순천 낙안읍성 안의 순천시 낙안면의 동내리와 그 이남의 교촌리·이곡리·내운리 등은 동편이 되고, 남내리·서내리와 그 이북의 성북리·상송리·하송리 등은 서편이 된다. 줄을 당기는 장소는 과거 원님이 있을 때는 낙민루 앞에서 원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겼는데, 그 이후에는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와 서내리가 나뉘는 삼거리에서 줄을 당겼다고 한다. 줄을 당기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줄을 메고 매구[농악]를 치면서 읍성을 한 바퀴 돌곤 했는데, 줄이 너무 커서 들 수 없는 경우에는 애기줄이나 중줄을 메고 줄다리기 노래를 부르면서 돌았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낙안 큰줄당기기의 승부는 대개 단판으로 끝났다고 하며, ‘암줄이 이겨야 시절이 좋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임경업 장군을 모신 당산제와 함께 낙안 큰줄당기기는 1년 중에서 가장 큰 굿이라고 할 만큼 특별하고 성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현황]
낙안 큰줄당기기는 순천시 낙안면에서 가장 크고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낙안 큰줄당기기는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는데, 당시 일제가 조선인들의 군중 집회를 금지했기 때문에 줄당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 다시 큰줄당기기를 했지만, 이때는 인근 마을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 낙안민속문화축제 때 관광객을 위한 행사로 낙안 큰줄당기기를 재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