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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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997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감천댐 건설 반대 운동. 1995년 시·군 통합 시의회에서 제적 의원 전원 참석에 28:1[당시 회의록에는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수자원공사에 댐 건설을 요청함에 따라 당시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위해 감천댐을 건설할 목표를 세웠다. 1996년 4월부터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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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개령 지방[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농민 항쟁의 하나인 개령민란은 삼정의 문란이 가장 심했던 때에 일어났다.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문란, 즉 삼정의 문란이 계속 되자 동학이 일어나고, 1862년 2월에는 진주에서 민란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불길이 거창·선산·상주·성주를 비롯한 인근 고을에까지 번지더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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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부분의 소국이 그러하듯 감문국(甘文國) 또한 1700여 년의 풍상 속에 대부분의 유적이 훼손되고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따라서 감문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은 제한된 사료(史料)와 전설, 문학 작품 등에 나타난 한정된 관련 자료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감문국이 성립될 수 있었던 데는 먼저 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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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회 변화를 일으키거나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운동. 김천 지역의 사회운동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국권 침탈에 대항하여 민족의식이 고취되고 사회 문제에 대한 농민, 노동자, 청년의 각성이 일어나는 시기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초기의 사회운동은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한 직접적 무장 투쟁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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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마을 앞 운남산(雲南山)의 이름을 따서 운남동(雲南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종상(從上)·석정(石井)·지산·용전의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 남면 운남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운남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운남1동·운남2동으로 분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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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윤칙(允則).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용담현령 이검송(李儉松)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근동(李根東)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이며, 부인은 성산 배씨이다.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삼남은 통정대부 이은계(李殷繼)이고 사남은 첨정 이은확(李殷確)이다. 이언의(李彦儀)[1600~1637]는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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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다냐?” 개령현 동부리 쌍샘 인근 비석거리에 사는 김규진은 애꿎은 담뱃대만 뻑뻑 빨아대며 한숨을 쉰다. 벌써 여러 날 전부터 개령관아에서 지난해 빌렸던 보리쌀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닦달을 하더니, 급기야 어제는 가마솥을 떼어 갔고 오늘은 또 동헌에 불려 나가 볼기까지 얻어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재작년 환곡을 갚지 못한 동생은 식솔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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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취오(聚五),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최상도(崔尙道)이다. 동생으로 최창규가 있다. 최동규(崔東奎)[1674~?]는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8세에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읽고 10세에 사서에 통달하였으며, 문예에도 특출하였다. 20세에 향시에 실패한 후 무예에 전념하여 26세인 16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