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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06
한자 隱林里
영어음역 Eulli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은림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3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38㎢
가구수 119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249명(남자 113명, 여자 136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풍수지리상 마을의 앞을 가리지 않으면 마을에 우환이 있을 것이라 하여 느티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숨을 은(隱)’자와 ‘수풀 림(林)’자를 써서 은림동(隱林洞)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위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군동·하군동·본동이 통합되어 김천군 위량면 은림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은림동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은림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감문면 은림리가 되었다.

[현황]

은림리감문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마을로 감문천 변 평야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2.3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19세대에 249명(남자 113명, 여자 13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구야리, 서쪽으로 어모면 군자리·덕마리·도명리, 남쪽으로 어모면 군자리, 북쪽으로 남곡리·금라리와 이웃하고 있다. 상군리·하군리·본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천 최대의 여흥 민씨 집성촌이다.

주변에 평야가 많아 벼농사가 발달했으며 1970년대 말까지 전국적인 왕골 돗자리 생산지로 유명하여 김천장이 설 때면 아천역이 왕골을 팔러 나가는 마을 주민들로 붐비곤 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은림리는 김천에서 왕골이 처음 재배된 곳으로 사래를 개척한 여흥 민씨가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왕골 씨앗을 가져와 재배한 것이 시초이다.

마을회관 앞에는 예사롭지 않은 느티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1450년경 마을을 지나가던 지관이 마을 지형이 앞을 가리지 않으면 마을에 우환이 있을 것이라 하여 느티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한 이래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아름드리 고목들을 배를 만든다며 모두 베어 숲이 제 역할을 못해 오다가 1996년 마을 주민들이 새로 나무를 심었다.

자연 마을로는 군명(君明), 하군명, 사래 등이 있다. 군명은 수원 백씨가 처음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군자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하며 붙인 이름이다. 은림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군이라고도 한다. 사래는 조선 인조 때 한양에 살던 여흥 민씨가 내려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달리 본리라고도 한다.

마을 뒤 감문면에서 어모면로 넘어가는 득뫼고개[일명 종매산고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맥을 끊기 위해 고개를 자르고 길을 냈다고 한다. 옛날 수원 백씨 집안의 백양위라는 아이가 죽자 하늘에서 용마가 내려와 울면서 넘어간 고개라 하여 마을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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