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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병대 단독 시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33
한자 日本憲兵隊單獨示威
영어음역 Japan Heonbyeongdae Dandok Siwi
영어의미역 Solo Demonstration against the Japanese Military Polic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종결 1919년연표보기
발생|시작 1919년 4월 5일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종결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성격 독립운동
관련 인물/단체 최무길

[정의]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최무길(崔武吉)의 주도로 벌인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필요성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에 따라 1919년에 접어들면서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3월 1일을 기해 전 민족적인 만세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김천은 일제의 한국 침략의 상징이 된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만들어진 신흥 도시로 경북 내륙의 주요 산물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대구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의 파이프 역할을 하는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여 만세 독립운동이 발발하는 주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경과]

1919년 4월 5일 김천군 조마면 신안동[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 사는 최무길평화동에 자리 잡은 일본 헌병대 영내에 잠입하여 독립 만세를 삼창하였다. 최무길은 지체 없이 달려드는 일본 헌병대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결과]

김천 주둔 일본 헌병대 영내에서 만세 시위를 벌인 최무길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의 재판에 회부되어 태형 90대를 언도받았다.

[의의와 평가]

일본 헌병대 단독 시위는 비록 단독으로 벌어진 시위 사건이었지만 시위의 현장이 헌병대 영내였다는 점에서 강한 독립 의지를 나타낸 만세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헌병대 단독 시위는 민족 독립의 필요성을 확인케 하였고, 이후 김천에서 만세 독립운동이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아가 전 민족적 항일운동인 3·1운동은 임시정부의 수립을 가능케 했으며, 공화정을 정착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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