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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장서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37
한자 -長書事件
영어음역 Pari Jangseo Sageon
영어의미역 Incident of the National Independence Petition Sent to the Paris Peace Conferenc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1919년연표보기
종결 1919년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독립 청원 운동
관련 인물/단체 송준필|최학길|이경균|이명균|이석균

[정의]

1919년 경상북도 김천 출신을 비롯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사건.

[역사적 배경]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림 세력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내세워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 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는 서한에는 김천 지역을 비롯해 명망 있는 영남 유림들이 서명에 참여하였다.

[경과]

장서의 본문은 2,674자에 이르는 한문체로, 곽종석이 기초를 잡았으며 김창숙(金昌淑)이 해외로 이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김천 출신 유림으로서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으로는 송준필(宋浚弼)을 비롯하여 최학길(崔鶴吉), 이경균(李璟均), 이명균(李明均), 이석균(李鉐均) 등이 있다. 송준필은 그의 종택인 성주 백세각에 친족과 자제들을 불러 모아 파리 장서를 제출하고 독립 시위를 전개할 것을 알렸다.

그 후 연락 본부를 백세각으로 정하고, 김창숙·송규선으로 하여금 곽종석과 협의하여 청원서를 초안토록 하였다. 또한 3남 송수근을 장석영에게 보내어 국내 유림에게 보내는 취지문을 작성케 하였다. 송희근과 여보회가 경비를 부담하여 취지문을 인쇄하고 이를 여러 사람이 각처 유림에게 돌리면서 1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서한은 김창숙이 상하이[上海]로 이송해 한문과 영문으로 번역하여 파리 강화 회의와 구미 각국에 보내졌으며 한문으로 된 것은 중국 각 지역으로 보냈다.

서한을 요약하면 “사람이나 나라는 모두 스스로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남의 통치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로 스스로 정치할 능력이 있으므로 일본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 일본은 교활한 술책으로 보호를 명목으로 한국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포악무도한 통치를 참을 수 없어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처지를 만국에 알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과]

외국과 파리 강화 회의에 서한을 보내는 것은 매우 우원하다 하여 송준필장석영이 조선총독부에 보낼 조선 독립 청원서의 초안을 작성하다가 발각됨으로써 파리 장서의 사실도 탄로 나고 말았다. 파리 장서 사건이 발각되자 연루된 유림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3·1운동의 독립 선언서에 참가하지 못한 유림 세력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독립 선언서 서명에 대한 오명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이후 유림 세력이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0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1) 한자항목명 파리藏書事件 ->한자항목명 파리長書事件 2) 이경균(李璟均), 이명균(李銘均), 이석균(李碩均) 등이 있다 ->이경균(李璟均), 이명균(李銘均), 이석균(李鉐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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