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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53
한자 金泉信里永川李氏旌閭碑
영어공식명칭 Yeongcheon Yi's Stele in Sin-ri, Gimcheon
영어음역 Gimcheon sil-ri Yeongcheonyissi Jeongnyeobi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주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1568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생년 1570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1597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1640년연표보기
보수|복원 1985년경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2000년 9월 4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5 지도보기
성격 정려비
관련 인물 영천이씨[1570~1597]|정유한[1568~1640]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84㎝[높이]|44㎝[너비]|21.5~22㎝(두께][이상 비신]|24㎝[높이]|56㎝[너비]|32㎝[두께][이상 좌대]
소유자 영일 정씨 선전공파 종중
관리자 영일정씨선전공파종중[정인영]
문화재 지정 번호 문화재자료 제387호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절개를 지킨 정유한영천이씨를 기리는 정려비.

[개설]

영천이씨[1570~1597]는 봉계마을[현 신리]의 영일정씨선전공파 문중의 정유한(鄭維翰)[1568~1640]의 아내로 경상북도 영천의 찰방(察訪) 이대유(李大有)의 딸이다. 영천이씨의 남편 정유한은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인보(仁輔)이며 아버지는 정내신(鄭儽臣)이다. 서울 남소문동에서 태어났으며, 전형적인 선비로 문장과 효행이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창의(倡義)를 하고 자비로 군비를 바치는 등 보국에 앞장섰다. 특히 정유한의 『고금사적(古今事蹟)』은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개인 일기로 귀중한 가치가 있다.

[건립 경위]

김천 신리 영천이씨 정려비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 영천이씨를 기리는 비이다. 영천이씨는 남편 정유한이 선전관으로 출정한 뒤 흑운산에 숨어 있다가 왜적에게 잡혀 왜적이 욕보이려고 유방을 만지자 더럽혀진 유방이라며 칼로 유방을 자르고 은장도로 28세에 자결하였다. 이에 왜군은 영천이씨를 칼과 활로 시신을 난도질하여 바위에 흩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1633년(인조 11) 조정에서 절부(節婦)의 칭호를 내렸고, 향리에서 부인이 순절한 자리에 정려비를 세우고 그 앞에 우물을 파서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위치]

김천 신리 영천이씨 정려비김천시 봉산면 신리 525번지 오래된 샘 옆의 정려각 안에 있다.

[형태]

김천 신리 영천이씨 정려비는 정려각 안에 있는데,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문은 닫혀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려각 처마 밑에 정판(旌板)이 걸렸고, 정려각 안에 작은 정려비가 서 있다. 비는 표면이 다소 울퉁불퉁하게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비신(碑身)은 높이 약 84㎝, 너비 약 44㎝, 두께 약 21.5~22㎝이다. 비신과 좌대(座臺)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상단의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되었다. 좌대는 높이 24㎝, 너비 56㎝, 두께 32㎝이다.

비각은 186×195㎝ 규모의 1칸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건물 옆면에는 박공널을 달았고, 자연석 주춧돌 위에 지름 약 28㎝의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 벽은 홍살문으로 되어 있으나, 1985년경 보수하면서 원형이 훼손되었다. 나머지 삼면은 흙벽인데, 벽면의 높이 3분의 2 지점에서 지면에 이르는 부분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비바람에 잘 견디게 하였다. 정면 처마도리에는 나무로 된 정려 편액이 가로로 걸려 있다. 편액에는 ‘통덕랑정유한처절부공인영천이씨지려 선조정유조왜적선사불욕경지책해인조계유명정(通德郞鄭維翰妻節婦恭人永川李氏之閭 宣祖丁酉 遭倭賊 先死不辱 竟至磔解 仁祖癸酉命旌)이라는 글이 있다. 원래는 비각 내부 뒷벽에 걸려 있었으나 홍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아 이곳으로 옮겼다.

[금석문]

비 앞면에는 ‘절부정유한처유인영천이씨지려숭정칠년갑술삼월일(節婦鄭維翰妻孺人永川李氏之閭 崇禎七年甲戌三月日)’이라는 글이 3행으로 음각되어 있다.

[현황]

정려각 앞에는 정자(井字) 형태의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정려각을 세우면서 함께 판 샘으로 절부 영천이씨의 거룩한 넋이 깃든 샘물을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길어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으며 현지 주민들은 ‘빗지거리 샘’이라고 부르는데, ‘비(碑)+집[閣]+거리[道]+샘’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바뀐 것으로 보인다.

1892년(고종 29) 12월 영천이씨는 숙부인(淑夫人)에 추증되었고, 정유한은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관리는 영천이씨 부인의 12세손인 정인영(鄭寅永)이 하고 있다. 김천 신리 영천이씨 정려비는 2000년 9월 4일 문화재자료 제387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