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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호문집』·『송오문집』 판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78
한자 鑑湖文集松烏文集版木
영어음역 Gamhomunjip Songomunjip Panmok
영어의미역 Woodblocks of the Collectioed Works of Gamho and Song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0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1710년연표보기
제작 1845년연표보기
제작 1860년연표보기
현 소장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08 지도보기
성격 책판
재질 나무
크기(높이, 길이, 너비) 3.2㎝[높이]|31.0㎝[길이]|54.0㎝[너비]
소유자 경양서원
관리자 경양서원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경양서원(鏡陽書院)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여대로(呂大老)여응구(呂應龜)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

[개설]

감호문집·송오문집 판목은 경양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104장의 『감호문집(鑑湖文集)』 책판과 50장의 『송오문집(松塢文集)』 책판을 말한다. 『감호문집』은 조선 후기 문신 여대로[1552~1619]의 시문집이다. 여대로의 자는 성우(聖遇), 호는 감호(鑑湖),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으며 1591년에는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고 송암(松庵) 김면(金沔)과 협력하여 왜적을 무찔렀다. 의성현령, 대구판관, 사헌부지평, 합천군수, 금산현령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송오문집』은 조선 전기 문신인 여응구[1523~1577]의 시문집이다. 여응구의 자는 문서(文瑞), 호는 송오(松塢),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2년(선조 5) 별시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후진 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사후 송계서원(松溪書院)과 경양서원에 제향되었다.

[형태]

『감호문집』은 모두 3권 2책으로, 104장의 책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심제는 권수제와 동일하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송오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모두 50장의 책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특징]

『감호문집』은 1710년(숙종 36) 여대로의 증손인 여문징(呂文徵) 등이 간행하였고, 1860년(철종 11)에 9세손 여찬조(呂纘祖)가 중간(重刊)하였다. 1710년에 민흥도(閔興道)가 지은 서문과 1860년에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중간서(重刊序)가 있으며, 1709년(숙종 35) 홍만조(洪萬朝)가 쓴 발문과 1710년 증손 여문징이 지은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을 살펴보면, 권1에는 시 176수, 부(賦) 4편, 전(箋) 2편, 권2에는 제문 2편, 서(序) 2편, 정문(呈文) 3편, 지명(誌銘) 4편, 서(書) 21편, 논(論) 1편, 책문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부록으로 정경세(鄭經世)·장현광(張顯光)·이호민(李好閔) 등이 지은 만사 70편, 정유성(鄭維城)·여덕노(呂德老)가 지은 제문 2편, 정상리(鄭象履)가 지은 행장 1편, 강학년(姜鶴年)이 지은 묘지 1편, 유명천(柳命天)이 지은 묘갈명 1편, 임진왜란 때의 의병 행적을 기록한 「창의실략(倡義實略)」 1편, 여이명(呂以鳴)이 지은 「금릉지(金陵誌)」 1편, 노계원(盧啓元)이 지은 「송계서원 상량문」, 김몽화(金夢華)가 지은 「경양서원 상량문」, 이사정(李師靖)이 지은 「봉안문」, 강세황(姜世晃)이 지은 상향 축문, 조호연(趙虎然)의 「경양서원 중수상량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송오문집』에는 1845년(헌종 11)에 완산 유치명이 지은 서문이 실려 있고, 이어서 「송오선생세계도」, 시 1수, 부 1편, 소(疏) 3편, 찬(贊) 1편, 제문 1편, 의(疑) 2편, 논(論) 1편, 책(策) 3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사우증유편(師友贈遺篇)」, 만사, 행장, 묘갈명, 「송계서원 상량문」, 「경양서원 상량문」, 「봉안문」, 상향 축문, 「경양서원 중수상량문」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1845년(헌종 11) 10세손 여무성(呂武聖)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감호문집』『송오문집』을 새긴 책판은 조선 시대의 문신인 여대로여응구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인본이 아닌 목판 실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서원의 출판과 인쇄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김천시사』(김천시, 1999)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23 본관 통일 여대로와 여응구의 본관을 성주로 통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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