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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영필 서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96
한자 吳俊泳筆書簡
영어음역 O Junnyeongpil Seogan
영어의미역 O Junyeong' Letter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남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 315
성격 편지
관련 인물 오준영
발급자 오준영
수급자 오준영의 형

[정의]

개항기 김천 지역의 미곡이 일본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은 오준영(吳俊泳)이 형에게 보낸 안부 편지.

[개설]

오준영은 1863년(철종 14) 부응교를 거쳐 다음해 사간이 되었다. 이후 이조참의와 좌부승지·대사헌·형조판서·우참찬 등의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1888년 경기관찰사, 1889년(고종 26)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오준영은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한 다음해인 1890년(고종 27) 일본인 토정구태랑(土井龜太郞)과 좌죽심삼(佐竹甚三) 등 두 명이 김천 조포 지역에서 대두(大豆)를 매점해 인천으로 운송하려는 것을 금지시키는 이른바 황해도 방곡 사건으로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여기서 방곡령은 흉작 등으로 국내의 식량이 부족할 경우 지방관의 명령으로 미곡 수출을 금할 수 있도록 한 조치이다. 이는 개항기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 침탈에 맞서 식량 주권을 사수하고자 했던 노력으로 보인다.

[형태]

크기는 가로 34.2㎝, 세로 24.3㎝이다. 조선 시대 전통 종이인 저지(楮紙)를 사용하였다.

[구성/내용]

오준영이 형에게 보낸 안부 편지로, “몸 건강히 잘 지내는지를 물으면서 자신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는데 업무는 더욱 번거로워져 공사(公私) 간에 고민이 많다[一瞚而春且暯矣 伏惟比來 台體萬旺 仰溯區區且祝 弟衰益侵務 益惱公私 悶然奈何 餘爲探不備 候上 庚人 三月 十八日 弟 拜 吳俊泳].”고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준영필 서간(吳俊泳筆書簡)」은 황해도 방곡 사건의 장본인인 오준영이 형에게 쓴 안부 편지로, 오준영의 필적을 살필 수 있으면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순천대학교 박물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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