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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72
한자 金洪大
영어음역 Yeo Daero
이칭/별칭 유운(遊雲),송정(松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599년연표보기
활동 1623년연표보기
몰년 1636년연표보기
활동 1637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성격 의병장
성별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유운(遊雲), 호는 송정(松亭). 김해 김씨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예이다. 동생으로 김홍붕(金洪鵬)이 있는데, 호는 호은(湖隱)이다. 그리고 김홍기(金洪基), 김홍진(金洪振) 역시 김홍대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김홍대(金洪大)[1599~1636]은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힘이 절륜하였고 말을 타고도 활을 잘 쏘았는데, 1623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우 김홍붕과 사촌동생 김홍순, 김홍철을 비롯하여 뜻이 맞는 100여 명을 모아 창의(倡義)한 후 남한산성을 향해 가던 중 추풍령에서 적을 만나 접전한 끝에 2명의 적을 베고 나머지는 항복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 쌍령(雙嶺)에 도착하였을 때는 성이 이미 함락된 후였다. 헤아릴 수 없는 전사자와 시신을 찾는 가족들의 아우성을 보고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였고, “홀로 성머리 백척루에 오르니/ 천지에 가득찬 풍우 수심만 자아내네/ 무심하나 한강수는 끝없이 서로 흘러/ 산하의 만고 수치를 씻으려 하네[獨上城頭百尺樓/ 滿天 風雨使人愁/ 無情漢水西流去/ 欲深山河萬古差].”하고 곧바로 적진으로 돌진했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적진을 향해 돌격하여 괴수 2명을 비롯하여 20여 명의 목을 베었다. 이 때 아우 김홍붕은 적을 매도하여 싸우다 순절하였고 형 김홍대는 아우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말만 끌고 왔다.

[묘소]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나라에서는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하고, 도에서는 포상을 하였다.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만취정(晩翠亭)김홍대 형제 사충신(四忠臣)의 유촉지(遺觸地)이다. 정자에 운창 박성양이 기문을 썼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5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나라에서는 병조참의(兵曺參議)에 증직하고 ->나라에서는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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