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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아마추어복싱연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345
한자 金泉市-聯盟
영어음역 Gimcheonsi Amateur Boxing Yeonmaeng
영어의미역 Gimcheon-si Amateur Boxing Federation
이칭/별칭 김천복싱협회,김천권투연맹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운동장길 1[삼락동 488-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재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1953년연표보기
개칭 1960년대 초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운동장길 1[삼락동 488-1] 지도보기
성격 체육 단체
설립자 정우
전화 054-435-7676[김천시 체육회]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복싱 단체.

[개설]

복싱은 고대 올림픽 때부터 중요한 경기 종목의 하나로 이어져왔는데 우리나라에는 1912년 10월 7일 단성사 대표 박승필이 유각권 구락부를 조직하면서 최초로 소개되었으며 권투라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선수권을 휩쓴 우리나라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대표적인 선수로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1932년 LA올림픽에 참가한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재학생이었던 황을수를 들 수 있다.

이후 1945년에는 문현승을 중심으로 대한권투연합회가 결성되고 황을수를 중심으로 조선권투연맹이 조직되었다. 그리고 YMCA에서 연중행사로 거행되어 오면서 1952년에 제9회를 맞이한 실내운동회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복싱은 스포츠로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설립 목적]

김천시 아마추어복싱연맹은 김천 지역 복싱 인구의 저변 확대와 복싱의 체계적인 교육과 발전, 동호인들의 권익 향상과 친목 도모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김천의 권투는 전국에서도 가장 앞서 보급되었는데 일제 강점기 홍윤식이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웰트급과 라이트급에서 전 일본 선수권 보유자로 이름을 날리다 1940년 김천으로 들어와 권투 보급에 앞장섰다. 광복 후에는 용두동에 도장을 개설하여 변억암, 김갑윤, 김호언, 박종근, 정우 등의 제자를 길렀다. 특히 김호언은 김천극장에 마련한 특설 링에서 벌어진 상주와의 친선경기 중에 공이 울리자마자 상대편 선수를 KO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뒤이어 정우가 대구의 강자 황문달을 KO로 눌러 김천 권투를 빛내기도 했다.

1953년에는 김천권투연맹을 조직하여 정우가 초대 회장을 맡아 활약하고 배영삼이 권투 체육관을 개설하여 후배 양성에 힘썼다. 1960년대 초에 김천아마추어복싱연맹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는 정희수가 국가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고 1983년에는 김천권투체육관을 운영했다. 한편 회장은 초대 회장 정우에 이어 2대 회장 배영삼, 3대 회장 김상호, 4대 회장 김학술, 5대 회장 강용운으로 이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78년 제59회 전국체육대회 경북선발전 밴턴급과 라이트급에서 이명수와 정희수가 각각 1등을 차지했으며 제32회 전국선수권선발대회에서는 정희수가 웰트급 1위를, 전국학생선수권대회에서는 구자명이 1위를 각각 차지했다. 또한 1979년 문화방송기 타기 경북선수권대회에서 이명수·이덕훈·정희수가 1위를, 제60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정희수가 웰트급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1980년 제11회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정희수가 1위를, 1988년 경북회장배선수권대회에서는 김천시가 단체 우승을 차지했다.

[현황]

2021년 10월 현재 서강일가 회장을, 이봉수가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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