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537
한자 金泉過夏泉
영어공식명칭 Gwahacheon well of Gimcheon
영어음역 Gimcheon Gwahacheon
이칭/별칭 주천,금지천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24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주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1990년 8월 7일연표보기
조성|건립 조선 중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243 지도보기
성격 유적
양식 석조
크기(높이, 길이, 둘레) 직경 120㎝
면적 99.2㎡
소유자 경상북도 김천시
관리자 경상북도 김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8호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샘물.

[건립경위]

김천 과하천은 1718년(숙종 44)에 간행된 『금릉지(金陵誌)』에는 옛날부터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지천(金之泉) 즉, 김천(金泉)이라 하여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향기가 좋아 주천(酒泉)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주천 또는 금지천이라 전해져 왔고, 김천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던 명나라 원군의 대장 이여송(李如松)이 샘물 맛을 보고 중국 금릉(金陵)에 있는 과하천(過夏泉)의 물맛과 같이 좋다고 감탄한 이후부터 금지천과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금릉이란 이름도 과하천이 있는 중국의 명소인 금릉에서 딴 이름이라고 한다.

[위치]

김천 과하천김천시 남산동 243번지 주택가에 있는 샘[우물]이다.

[형태]

김천 과하천은 화강암으로 사각형의 가두리를 쌓고 샘 주변은 막돌과 시멘트로 둥글게 담을 둘렀다. 직경 120㎝, 깊이 420㎝의 원형 우물이며 우물의 내벽을 깬 돌로 쌓아 매우 견고한 구조로 되어 있다. 현재 주위에는 시멘트 담장을 쌓고 함석지붕을 씌웠으며, 우물에는 뚜껑을 덮어 보호하고 있다. 샘물 뒤 담벽에는 1882년(고종 19)에 ‘금릉주천(金陵酒泉)’이라는 글씨를 새긴 돌이 세워져 있다.

[현황]

김천 과하천의 샘물로 술을 빚으면 그 술의 맛과 향기가 좋아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진상품이 되었고 술 이름은 과하주(過夏酒)라 하였다. 그러나 진상을 핑계로 바치는 공물의 양이 늘어나게 되자 이룰 감당할 수 없게 된 백성들이 과하천을 메워버린 적도 있었다. 이 과하천이 지금의 과하천 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며, 또한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으나 김천 과하주는 『금릉승람(金陵勝覽)』에 따르면 여산(驪山)·호산(湖山)·춘운(春抎)의 과하주와 더불어 전국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지금의 김천시 남산2동에 있는 김천 과하천의 물로 빚었다고 하며, 다른 지역 사람들이 금릉 사람에게서 술 빚는 방법을 배워가 만들어도 샘물이 달라서 김천의 술맛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금지천은 묻혀 있지만 지금의 김천 과하천은 오래전부터 ‘과하주샘’으로 불려오고 있다. 예전에 김천주조회사[큰 도가]에서 이 샘물을 길러다가 과하주를 생산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고 광복 후 재개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다시 중단되었다. 정월 보름날을 전후해서 큰 도가에서 과하주 샘물을 긷는 물지게꾼의 행렬이 길게 뻗은 광경은 볼만한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오늘날에 재생된 과하주는 과하천의 샘물이 오염되어 이 물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과하주는 토속주로서 전승되다가 본격적으로 생산 체제를 갖춘 것은 1930년 한일인 합작인 김천주조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과하주란 이름으로 청주를 양조하고 부터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에 문을 닫았었다. 1986년 김천주조 직원 출신인 조무성과 송재성이 완벽히 재현 이래, 과하주는 민속주로서 이 지역의 주민이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생활, 민속 유적으로 현재의 지방 특산품의 유래, 연혁,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