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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풍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739
한자 金陵風景
영어음역 Geumneungpunggyeong
영어의미역 Scenery of Geumneu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태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1855년연표보기
저자 몰년 1939년연표보기
배경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가사
작가 최송설당

[정의]

경상북도 김천 출신인 최송설당이 지은 한글 애향 가사.

[개설]

「금릉풍경」은 조선 후기에 태어나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하의 불운한 시기를 살다 간 김천의 여류 교육자요 작가였던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이 지은 애향·축원 가사이다. 금릉(金陵)이란 김산(金山)[현 김천]의 고호(古號)이다. 예전부터 고향 산천의 풍경을 읊은 시가(詩歌)는 전국적으로 많았고, 김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초기 대문장가였던 적암(適庵) 조신(曺伸)[1454~1528]이 김산군[현 김천]의 역사와 지리를 제재(題材)로 하여 「군지제영(郡誌題詠)」 12수를 남기었다. 또 천재 시인 죽헌 김덕승(金德升)[1637~1662]이 「동국읍호부(東國邑號賦)」에서 향토[김산·지례·개령]를 노래하였다. 문암 박용수는 지례 풍물로써 「구성가(龜城歌)」를 지었다. 만취당 이인관은 개령 풍물을 「감문가(甘文歌)」로 읊었다. 주로 자연 부락의 동명(洞名)으로써 고장의 풍물을 긍정적으로 노래하였다.

그러나 최송설당이 지은 한글 가사 「금릉풍경」은 금릉의 산천과 풍경을 감정 이입한 생물체로 보아 애향·축원 가사를 제작한 점에서 영남 사대부가 중심의 규방에서 제작된 규방 가사와 제재의 선택·수사법·주제 의식 등에서 사뭇 다르다.

[구성]

「금릉풍경」은 총 40구의 가사로 서사[1~12구], 본사[13~36구], 결사[37~40구]의 3단 구성을 취하였다. 한 음보는 3·4조와 4·4조를 기본 율격으로 하였으며, 한자어는 한글의 우견(右肩)에 병기하였다.

[내용]

백두산일지(白頭山一枝脈)이/ 동(東)으로 버더나려/ 대소산(大小白山) 되얏스/ 소백산셔북(小白山西北)가지/ 속리산(俗離山)이 되얏/ 속리산(俗離山) 쥴긔가/ 남(南)으로 버더나가/ 금릉(金陵)으로 치(排置)고/ 금쳔명당(金泉明堂) 여럿데/ 산명슈려(山明水麗) 그가온/ 긔암괴셕쌍립(奇巖怪石雙立)니/ 그 형샹(形像)이 이샹(異常)다/ 샹(相對)야셧 모양(貌樣)/ 람으로 이르며/ 신랑신부(新郞新婦) 마쥬셔셔/ 초례(醮禮) 거동(擧動)갓치/ 남동녀서완연(南東女西宛然)고/ 각졔구구비(各色諸具俱備)다/ 용두방축동상(龍頭防築童子床)에/ 황산(黃山)이 기럭이오/ 감쳔슈쥬젼(甘泉水酒煎子)에/ 약슈동(藥水洞) 술잔(盞)이라/ 과하쥬천(過夏酒泉) 슐을부어/ 교(交拜) 거동(擧動)이며/ 하로로인샹(賀老老人上客)으로/ 마좌산(馬佐山) 말을모니/ 시(市內)거리 연셕(宴席)되어/ 왕(來往)손님 모여든다/ 미곡(米穀)에 싸인 미(白米)/ 금곡(金谷)에 빗는 황금(黃金)/ 봉황대샹봉황유(鳳凰臺上鳳凰遊)라/ 봉황(鳳凰)갓흔 화락부부(和樂夫婦)/ 고왕금류젼(古往今來流轉)니/ 텬장디구무궁(天長地久無窮)일세/ 금릉산쳔(金陵山川) 이르기를/ 이로더욱 명구(名區)로다/ 이에셔 나 녀(子女)/ 남녀혼(男娶女婚)게 되면/ 군숙녀썅(君子淑女雙)을 일워/ 봉황우비(鳳凰于飛)오리다.

서사[1~12구]는 금릉이 명당 금천(金泉)을 품은 승지임을 전제하였다. 백두대간이 태백산백·소백산맥으로 내려 소백의 단전(丹田) 속리산을 짓고, 속리산의 정기를 받아 금릉이 펼쳐졌다. 그 가운데 금이 나는 샘[金泉]이 있고, 그 샘을 에워싼 산수의 형상이다. 이 형상은 혼례형국(婚禮形局)인데, 풍수지리상 이 형국이 가장 기이하다고 하였다. 이 같은 서사는 본사에서 금릉 풍경을 혼례 광경으로 풀어갈 단서를 마련한 것이라 하겠다.

본사[13~36구]는 부부 탄생의 초례청(醮禮廳)을 마련하였다. 용암동 모암산의 사모바우[紗帽岩]와 양금동 고성산(姑城山, 高城山)의 할미바우에 얽힌 전설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 곧 동방의 남신(男神)은 사모바우가 되고 서방 황악산(黃嶽山)의 여신은 할미바우가 되어 이 둘이 혼례를 치를 때 하로(賀老)가 상방(上房)이 되고 지좌동황산(黃山)은 신방의 병풍이 된다는 전설로써 금릉 풍경을 묘사하였다. 두 바위가 혼례의 주인공이 되고, 주변의 산천은 초례청의 소도구가 되거나 또 의식의 집전자가 되어 군자·숙녀로 하여금 한 쌍의 봉황 같은 부부로 탄생시키었다. 지형·지명 설화와 풍수지리설로 금릉의 풍경을 초례청으로 가져온 작자의 구상·표현력이 뛰어남을 볼 수 있다.

결사[37~40구]는 향토애를 발양하여 축원가를 완성하였다. 금릉·김천은 곧 봉황같은 부부가 될 군자·숙녀가 태어날 길지(吉地)로서 영구히 생성의 모태가 될 곳임을 재확인하고, 언외(言外)에 다는 향토가 인재의 텃밭이 되기를 축원하는 마음을 무한히 펼쳐 놓았다. 이 염원이야말로 최송설당「금릉풍경」을 지은 궁극적 목표·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특징]

최송설당「금릉풍경」은 유상(遊賞)의 즉흥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규방 가사와 성격이 아주 다르다. 가사를 통하여 고향의 산천을 더 의미 있게 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작가가 염원하는 바를 말의 밖에다 무한히 펼쳐 놓았다.

고향 금릉의 명당지 금천 주변의 산천에 얽힌 혼례형 풍수설을 원용하여 봉황 같은 군자·숙녀가 부부로 탄생케 하였으며, 이와 함께 봉황 같은 군자·숙녀 등이 계속 탄생하는 길지가 되기를 축원한 것이라 하겠다. 이는 사물에 대한 일차적 의미만을 부각하던 규방의 가사들과 달리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망국민의 한을 고향 산천에 이입(移入)시켜 번성의 땅·생성의 땅이 되기를 비는 마음을 교묘히 펼쳐 보였다. 가히 언단의장(言短意長)의 유원미(悠遠美)를 최대한 살린 가사를 제작하였다고 하겠다. 가사 문학에서 이와 같은 구성·수사·주제를 다 살린 작품은 희귀하리라 본다.

[의의와 평가]

최송설당「금릉풍경」은 시대적 산물로써 가사 문학의 현대화 방향을 제시한 창작 기법을 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송설당의 작가적 역량이 뛰어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의미를 현실 위에서 가장 진실하게 깨우쳐 가는 작가임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작가의 혼을 담을 그릇에는 신구의 우열이 있을 수 없음을 확인시켜 준 것에 「금릉풍경」이 가사로서의 존재 의의는 크다고 하겠다. 가사 문학을 통하여 내 안의 닫힌 세계에서 너 안의 열린 세계로 문학성을 넓혀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을 최송설당이 열어 놓았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23 성명 정정 요청 '모암 박용수'는 '문암 박용수'로, 만취당 '이인실'은 만취당 이인관으로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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