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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748
한자 分財記
영어음역 Bunjaegi
영어의미역 Written Record of How One's Assets Will be Distributed within Their Family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40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급 1449년연표보기
발급 1516년연표보기
발급 1550년연표보기
발급 1578년연표보기
소장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40 지도보기
성격 고문서|분재기
관련 인물 김호의 처|김만구의 처 김씨|김효로
용도 노비 분급|재산 분배
발급자 김만구의 처 김씨|김효로
수급자 배임령|배습령|김호의 처|김만구의 첩 자제|김효로의 자제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5~16세기 고문서.

[개설]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은 창녕 조씨 찬성공파 조창현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분재기(分財記)』는 1449년(세종 31)에 작성한 분재기[1], 1578년(선조 11)의 별급 문기[2], 1516년의 입안 신청 소지와 입안 발급 과정에 작성된 관련 문서 4장의 점련(粘連 )[호적에 새로운 사실을 추가할 때 원 대장(臺帳)에 붙여서 잇는 것] 문서[3], 1550년(명종 5)의 화회 문기 등 4건의 분재기[4]이다.

[제작 발급 경위]

1449년에 작성한 분재기는 배임령(裵衽袊)·배습령(裵褶袊) 등의 어머니가 죽은 뒤 자식들이 모여 어머니의 노비를 분배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578년의 별급 문기는 충순위(忠順衛) 김호(金壕)의 처에게 비(婢) 언금(彦今)을 내려주고 아울러 그 소생 또한 노비로 삼게 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516년에 작성된 문서는 선무랑단성현감(宣務郞丹城縣監) 김만구(金萬鉤)의 처 김씨가 첩의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것에 대해서 입안을 발급 받기 위해 작성된 것이고, 1550년의 화회 문기(和會文記) 등 4건의 분재기는 안동에 거주하던 광주 김씨 김효로(金孝盧)가 자제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형태]

[1] : 크기는 43.5×35.0㎝, 문서의 아래 부분은 약간 훼손된 상태이다.

[2] : 크기는 77.5×52.5㎝, 문서 말미에 재주(財主)인 고(故) 통선랑전안기도찰방(通善郞前安奇道察訪) 김표(金彪)의 처 김씨의 인기(印記)와 증인인 차자(次子) 유학(幼學) 김종선(金宗善), 여서(女婿) 전 현감(縣監) 소후(蘇後), 필집(筆執)인 장자(長子) 충순위(忠順衛) 김방선(金邦善)의 착압이 있다.

[3] : 첫 번째 입안 신청 소지는 앞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다. 문서의 크기는 입안신청소지(立案申請所志), 분재기(分財記), 소식절(消息節), 초사(招辭), 입안(立案)의 점련된 순서대로 39×40㎝, 38.0×450.0㎝, 52.5×54.0㎝, 32.5×46.0㎝, 51.3×239.0㎝이다.

[4] : 크기는 36.0×168.0㎝, 권말에 상속 받는 사람 4인과 필집 김모(金某)의 착압이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 김연은 고인이 되었으므로 그의 처 조씨(曺氏)가 대신하였으며, 여성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인기(印記)를 날인하고 있다. 문서의 이면에는 문서를 이은 부분을 포함한 일곱 곳에 필집자가 성과 착명을 적어 확인하였다.

[구성/내용]

[1] : 1449년에 작성한 분재기(分財記)로, 그 내용은 어머니가 죽은 뒤 1449년 9월 3일에 장남 사용(司勇) 배임령(裵衽袊), 장매(長妹) 사정(司正) 유□□(柳□□), 이남 유학(幼學) 배습령(裵褶袊)이 모여 회의하고 어머니의 노비를 분배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배임령에게는 노(奴) 복룡(卜龍)[51세], 노(奴) 상금(象金)[31세], 비(婢) 막덕(莫德)의 두 번째 소생 비(婢) 녹장(彔藏)[16세]을 주고, 유□□에게는 노(奴) 삼동(三同)의 양처(良妻) 내은(內隱)과 그녀의 소생 노(奴) 몽석이(夢石伊)[49세], 죽은 비(婢) 눌근(訥斤)의 소생 비(婢) □□, 비(婢) 단화(丹花)의 소생 노(奴) 내은달(內隱達)[6세]를 주고, 배습령에게는 비(婢) 개덕(介德)의 소생 비(婢) □□[17세], 비(婢) 막덕(莫德)의 첫째 소생 노(奴) 상이(象伊)[18세], 노(奴) □□의 양처(良妻) 고음(古音)이 낳은 노(奴) □□ 등을 분배하고 각각의 노비 후소생(後所生)을 함께 분배하는 내용이다.

[2] : 1578년 충순위(忠順衛) 김호(金壕)의 처에게 비(婢) 언금(彦今)[22세]을 내려주고 아울러 그 소생 또한 노비로 삼는다는 별급 문기이다. 노비를 별급 받은 사람은 김호의 처로 그 이유는 가옹(家翁)이 살아 있을 때 다른 자녀들에게 아울러 재산을 별급할 때에 빠졌었는데 이는 균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비 언손량(彦孫良)의 처에게서 태어난 일소생비(一所生婢) 언금을 별급함과 함께 그 소생도 가지도록 한 것이다.

[3] : 1516년에 선무랑단성현감(宣務郞丹城縣監) 김만구(金萬鉤)의 처 김씨가 첩의 자식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분재기와 입안을 발급받기 위한 증인들의 진술서 및 봉화현의 입안 문서 등 4장이 점련되어 있다. 총 5건으로 이루어진 이 문서의 첫 번째는 관에 입안을 신청하는 소지인데, 앞부분이 거의 훼손된 상태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이어서 1516년 2월 13일에 작성한 분재기와 재산을 분배한 김만구의 처 김씨와 손문중(孫文仲) 외 2인이 동년 4월 10일에 작성한 진술서 2건과 끝으로 같은 해 4월 22일에 봉화현에서 발급한 입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분재기는 수양자(收養子) 김수(金綏)와 가옹(家翁) 첩(妾)의 자녀 귀금(貴今)과 귀은(貴銀)에게 노비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가옹의 처 김씨는 자식이 없으며 가옹이 작년 2월에 별세하였고, 자신 또한 병이 심하여 2월에 김수에게 김씨 쪽의 노비 95명과 가옹 쪽의 노비 5명, 묘지기인 노 4명을 주고, 가옹 첩의 자녀 귀금에게 노비 3명, 귀은에게 노비 2명을 나누어 준다는 내용이다.

[4] : 1550년 안동에 거주하던 광주 김씨 김효로가 자제들에게 재산[전답]을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화회 문기이다. 재산을 상속받은 대상은 장자 관찰사 김연(金緣)[1487~1544], 차자 생원 김수(金綏), 장녀 전 용궁현감(龍宮縣監) 김우(金雨), 차녀 전 훈도(訓導) 금재(琴榟)이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이전의 분재기 수가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분재기』는 임진왜란 이전 재산 상속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 당시 경상북도 안동 지역 양반가의 재산 상속 방식과 재산 규모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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