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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85
한자 金文起院墟碑
영어음역 Gim Mungi Wonheobi
영어의미역 Gim Mungi's Monument Ston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산5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창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1399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1456년연표보기
건립 1898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산51 지도보기
성격 원허비
관련 인물 김문기|송근수
재질 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120㎝[높이]|34㎝[너비]|17㎝[두께]
관리자 김연삼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문기의 원허비.

[개설]

김문기(金文起)[1399~1456]는 본관이 김녕(金寧)으로 호는 백촌(白村)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두루 관직을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1456년(세조 2) 병자사화 때 이조판서로 이개(李塏)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사전에 탄로나 순절하였다.

[건립 경위]

김문기를 배향한 섬계서원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김문기를 추모하고 강직함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1898년(고종 35) 서원 자리 임을 나타내는 자리를 세웠다.

[위치]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대덕마을 섬계서원 안에 있다.

[형태]

크기는 높이 120㎝, 너비 34㎝, 두께 17㎝이며 재질은 오석이다.

[금석문]

김문기 원허비 비문은 봉조하 송근수(宋近洙)가 지었고 서체는 해서체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례현(知禮縣) 남쪽 20리 되는 곳에 옛날 섬계사(剡溪祠)가 있었다. 이곳은 단종을 위해 순절한 백촌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그의 아들 현감 김현석(金玄錫)이 배향되어 있었다. 지금의 왕 병인년[1866(고종 3)]에 조정의 명령으로 철거되자 공의 자손들이 그곳이 황폐화되는 것을 보다 못해 단을 세운 다음 이번에 비석을 세워 공의 일을 드러냈다.

공의 이름은 문기(文起)이고 본관은 김녕으로, 백촌은 호이다. 선덕(宣德) 병오년[1426(세종 8)] 생원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문과에 급제하여 세 왕을 모셨다. 관직은 판서까지 올랐다. 세조 병자년[1456(세조 2)] 사육신과 연루되어 사형을 받은 사람이 30여 명이었는데 공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들 김현석도 같은 날 목숨을 잃었다. 영묘(英廟) 신해년[1731(영조 7)]에 비로소 관작이 회복되었고, 정조 무술년[1778(정조 2)]에는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런 일의 전말이 모두 실려 있는 유사(遺事)가 간행되어 세상에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보태지 않았다.…”

[현황]

김문기 원허비는 현재 섬계서원에 있으며 김연삼이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충신을 받들어 모시는 후손들의 마음과 정성을 잘 보여주는 비이다.

[참고문헌]
  • 『김천의 금석문』(김천문화원, 1997)
  • 경상북도 인터넷신문 프라이드뉴스(http://news.gyeongbuk.go.kr/)
  •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http://gsm.nri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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