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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뜰챙기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30102
영어공식명칭 Jangddeul Chenggig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민경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형성 시기/일시 1940년대 중반 - 「장뜰챙기가」 경상북도 김천 증산 장평리와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에서 탄생한 토속민요
채록 시기/일시 2012년연표보기 - 「장뜰챙기가」민경탁과 상주군 문화관광과에서 이효분에게 채록
채록지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2리
가창권역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지도보기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성격 토속 민요
가창자/시연자 이효분

[정의]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김천·성주 지역에서 탄생한 토속 민요.

[개설]

「장뜰챙기가」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장평(壯坪)[일명 장뜰]과 성주군 금수면 무학 2리[일명 챙기: 예의 가천초등학교 무학분교가 있던 마을] 간에 불려진 토속 민요로 님을 그리는 노래이다.

[유래]

김천시 증산면 장평에서 대가천을 끼고 성주 쪽으로 20리를 내려가면 챙기마을에 닿는다.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김천 장뜰마을 총각이 성주 챙기마을로 장가를 갔다. 그런데 신랑이 초례를 치르고 채 삼 일이 아니 되어 일본군에 강제 징발되어 끌려갔다. 새색시는 챙기마을 뒷산에서 일본이 바라보이는 동쪽만 바라보고 신랑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다가 미친 듯 노래 하나를 지어 불렀다. 신랑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색시가 대가천 연못에 투신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채록/수집 상황]

「장뜰챙기가」는 성주 서부지역에서 연연히 불렸다가 성주군 출신 배철 수필가가 2011년에 이 노래의 존재를 공개했고 2012년 민경탁과 상주군 문화관광과에서 채록하였다. 「장뜰챙기가」 채록 당시 가창자는 이효분[당시 84세, 경북 성주군 금수면 어은2리[상후리실]]이었다.

[구성 및 형식]

「장뜰챙기가」의 가창 방식은 주로 혼자 부르는 독창이다. 어구의 반복이 없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남편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훗날 홀치기 또는 삼을 삼을 때 노동요로도 겸용되었다.

[내용]

장뜰 땅땅 범나비가/챙기 땅땅 꽃을 두고/원수년의 대동아전쟁에/우리 님을 데려가디/한 번 가신 우리 님은/다시 올 줄 왜 모르노

[의의와 평가]

「장뜰챙기가」는 민족의 뼈아픈 역사와 일제 강점기를 힘겹게 거쳐 온 부녀자들의 생애를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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