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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30141
한자 鄭成良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인물/문무 관인,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덕마리 산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갑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1450년연표보기 - 정성량 경오 식년시 문과 합격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출생지 정성량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지도보기
묘소|단소 정성량 묘소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덕마리 산1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서산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정성량의 본관은 서산(瑞山)이고 정인경(鄭仁卿)을 시조로 한다. 할아버지는 군기부정(軍器副正)을 지내고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에 봉군된 서산 정씨 김천 입향조인 정윤홍(鄭允弘)이고, 아버지는 예안군수를 지낸 정사인(鄭斯仁)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정성량(鄭成良)[?~?]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산 정씨(瑞山鄭氏)의 5세인 정윤홍(鄭允弘)은 고려에서 군기부정(軍器副正)을 지내고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에 봉군되었는데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로 낙향하여 서산 정씨 김천 입향조가 되었다. 입향조의 손자인 정성량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하며 1450년(문종 즉위)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에 문과 합격하여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에 오르고 이어서 사인(舍人)을 거쳐 외직으로 보성군수(寶城郡守)를 끝으로 고향 봉계마을로 낙향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뒤에도 학문이 정련(精練) 박식(博識)하여 공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용문산 아래에 우거하면서 시주를 즐기면서 만년을 보냈다.

[묘소]

정성량의 묘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덕마리 산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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