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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초등학교 백 년의 역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A010103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특별한 운동회가 열리다]

2010년 5월 1일,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개령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침 일찍부터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2009년 예정됐던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가 신종 인플루엔자로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교 101주년이 되는 2010년에서야 지각 기념행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령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빗내풍물단의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막이 오른 운동회는 할아버지뻘 되는 졸업생과 손자뻘 되는 재학생이 함께 어우러진 가운데 이어달리기와 물풍선 던지기, 미꾸라지 나르기, 줄다리기, 바구니 터트리기 등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아이고, 인제는 글렀다. 소시 적에는[한창 때는] 나도 날랐는데. 니 혼자라도 뛰어가라”

개령초등학교 26회 졸업생으로 생존한 최고령 졸업생인 이병탁[1926년생] 씨가 증손자뻘 되는 학생과 함께 미꾸라지 나르기를 하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손을 가로젓는다.

“참말, 옛날 생각나는구마. 그때는 좁은 운동장에 500명이나 되는 아들이 바글바글하게[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운동회 한번 하마[하면] 말이지, 개령·아포 일대가 떠들썩했어.”

이병탁 씨는 1930년대로 돌아가 초등학생이 된 듯 해맑게 웃으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주민들의 사랑 속에 발전하는 학교]

개령초등학교는 사립 개진학교로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개령 지역의 문화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이 되어 왔다.

특히 학교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그야말로 동부리를 비롯한 인근 동리의 주민 잔칫날이 되었다. 면 지역에 학교가 귀하던 1940년대에는 원근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는데, 아포·어모·감문·농소는 물론이고 선산에서까지 유학을 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개령초등학교는 1909년 4월 9일 개교한 사립 개진학교가 모태로, 1906년 지례초등학교의 전신인 일중소학교와 김천초등학교의 전신인 광흥학교, 김천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 김천심산고등소학교에 이어 김천 지역에서는 네 번째로 설립되었다.

1919년 개령공립보통학교로 승격하고 1946년 개령국민학교, 1996년 개령초등학교로 개칭한 이래 2011년 2월 16일 마침내 98회의 졸업생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의 개령초등학교]

개령초등학교감문국의 도읍지에 소재한 학교로서 김천 역사와 문화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자부심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2000년과 2006년 개령초등학교 교장을 거쳐 2007년 9월 이 고장 첫 공모 교장으로 다시 학교장으로 부임한 안광태[1949년생] 씨는 개령초등학교의 위상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마침 운동장에서는 농악 야외 수업이 한창인지라 풍물소리가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개령초등학교 농악대는 2001년 5월 빗내농악 전승 시범학교로 지정된 후 전국의 크고 작은 풍물대회를 석권해 일약 대표적인 초등부 풍물 학교로 부상했다.

2003년도 화랑문화제사물놀이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서 제12회 경상북도농악경연대회 대상, 제12회 전국학생풍물경연대회 장원, 제14회 전국청소년문화큰잔치 국무총리상, 제7회 대한민국청소년 동아리경진대회 최우수상 등 수상 실적이 자못 화려하다.

학생들이 농악 교육을 싫어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교생이 49명인데 3학년 이상 학생 40명이 농악부에 가입해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2시부터 4시까지 농악 수업을 합니다. 창단 초기에 학부모들이 수업에 지장이 있을까 싶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기도 했는데, 농악을 통해 자녀들의 성격도 명랑해지고 음악에 대한 식견이 높아지니까 이제는 오히려 학부모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특히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해요”

농악 연습 중에 잠시 만난 어린이회장 안지혜[1998년생] 양은 “농악을 통해서 우리 전통 가락을 익히고 친구들 간에 협동심을 키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활짝 웃는다. 삼한 시대 동부리를 중심으로 성립된 소국 감문국에서 유래한 빗내농악이 개령초등학교 고사리들의 손에 의해 다시금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령초등학교는 지역 학교 최초로 영어 신문을 발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70년까지 700명의 학생을 자랑하던 큰 학교였다가 지금은 전교생 49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로 외형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작지만 강한 학교, 농촌 유학 학교를 만들어 볼 작정입니다.”

안광태 교장의 의지가 자못 대단하다. 개령초등학교 운동장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에 모내기가 한창이다.

그 위로 감문국의 후예들이 힘차게 울리는 풍물소리가 풍년의 약속인 양 하염없이 울려 퍼진다.

[정보제공]

  • •  이병탁(남, 1926년생, 아포읍 대신리 주민, 개령초등학교 26회 졸업생)
  • •  안광태(남, 1949년생, 개령면 동부리 개령초등학교 교장)
  • •  안지혜(여, 1998년생, 개령면 동부리 개령초등학교 어린이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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