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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A010201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집필자 송기동

[동부리의 명물 쌍샘]

개령면 동부리 마을 입구, 현재의 개령파출소 앞에는 두 개의 우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양쪽의 우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예부터 쌍샘이라 불렸는데, 1년 365일 맑은 물이 넘쳐흘러 동부리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우물이자 빨래터였던 곳으로 지금은 동부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마을 안에 함부로 우물을 파면 용왕신이 노한다 하여 우물을 뚫을 수 없었던 탓에 오랫동안 쌍샘동부리의 유일한 우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음력 1월 15일 자정이면 마을 주민 중에서 지난해에 흉사를 겪지 않은 가장 깨끗한 사내를 골라 제관으로 삼아 쌍샘의 물로 목욕하고 동제를 올리는 것이 동부리의 가장 큰 연례 행사였다. 당연히 제당은 쌍샘이었다.

동부리에서 쌍샘은 유일무이한 식수원인 동시에 마을의 안위를 의탁하고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던 것이다.

[쌍샘의 물이 변하면 변고가 생겨]

예부터 동부리에서는 마을에 흉사가 생길 징조를 쌍샘이 알려 준다는 믿음이 내려왔다. 곧 쌍샘의 변화는 감문산에 대한 불경한 행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동부리 주민들에게 감문산은 어떤 산인가?

저 옛날 감문국 시대부터 나라를 지켜 준다는 성황신이 산다 하여 성황산으로 불렸고, 매년 왕이 정상에 올라 나라 제사를 드렸던 곳이다. 또 사로국이 쳐들어올 때 모든 백성이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감문산성이 있는 개령 땅의 보루가 아니었던가?

또한 신라 때는 풍수적으로 호랑이의 형상인 까닭에 흉사가 빈번하자 아도화상계림사를 창건하여 마을의 복덕을 염원했던 길지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감문산에 대한 동부리 주민들의 경외감은 극에 달하여, 이 산에 대해 어떠한 불경한 언행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감문산에 대한 불경한 행위가 있게 되면 마을에 화가 미치는데, 그전에 쌍샘 물이 변하는 것이 징조라고 여겨서, 불경의 원인을 제거해야만 마을에 변고가 없다고 믿었다.

그 중 가장 큰 불경은 신성한 감문산에 시신을 묻는 것이어서, 만약에 이를 어기고 묘를 들이면 묘를 들인 집안은 번성하지만 반대로 마을 사람들은 망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감문산을 근거로 살아가는 동부리 주민들은 감문산에 묘를 들이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간주한 것은 물론, 타지 사람들이 발복을 바라고 몰래 암장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주민들의 당연한 소임이라고 여겨서, 전체 주민이 횃불까지 동원해 밤늦도록 산을 뒤져서 암장한 시신을 찾아내면 화장을 하는 것으로 성황신을 달랬다. 1955년 동부리에서 실제로 쌍샘의 물이 변하면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보았다.

[1955년 7월의 동부리]

“물이 뒤집혔다.”

“쌍샘물이 뒤집혔어.”

동이 트기 무섭게 물을 긷기 위해 쌍샘에 나온 새댁이 새파랗게 질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댄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하더니, 쌍샘 주변을 족히 수십 명의 주민들이 에워쌌다.

“아이고 우짤까?”

“또 무신 일이 벌어질라꼬 물이 뒤집힌기라.”

여기저기서 소란이 인다.

“필시 지난밤에 누가 또 감문산에 암장을 한기라. 그라지 않고는 물이 뒤집힐 리가 없어.”

“맞아. 요전에도 꼭 요랬는데 어떤 놈이 저그 아부지 시신을 몰래 묻어 놓은 걸 우리가 찾아냈지 않나.”

“가자. 오늘 내로 찾아내야만 성황님이 화를 푸신대이.”

그길로 주민들은 곡괭이를 들고 마을 뒷산인 감문산으로 올라가 기어이 암장한 시신을 찾아내 화장을 하고야 말았다.

[개령 동부리의 명물, 다시 맛볼 수 있기를]

쌍샘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믿음은 오랫동안 이어져 지금도 감문산에는 묘지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근년 들어 일부 사유지를 중심으로 묘지가 들어서긴 했으나, 적어도 쌍샘 방향으로는 자리를 잡지 않은 것으로 예를 표하고 있다.

수많은 아낙네들로 붐볐던 쌍샘은 이제 찾는 이 하나 없지만, 어릴 적 추억이 고여 있는 쌍샘을 잊지 못한 한 출향인의 찬조 등으로 말끔히 단장되었다.

개령 동부리의 명물, 쌍샘 물맛을 다시 맛볼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해 본다.

[정보제공]

  • •  강상철(남, 1927년생, 개령면 동부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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