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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과 친정 모두 원터마을이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B030103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다희

[원터마을 문화유산해설사]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회관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 할머니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화통한 성격에 걸걸한 목소리, 외람되게도 귀여운 몸짓의 이자영[1935년생] 씨다.

“어이구, 또 왔어? 오늘 복숭아를 좀 삶아 놨는데 복숭아 좀 먹고 가. 혼자 먹는 거보다 같이 먹어야제.”

“할아버지 향사 왔어? 여기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냐면 가례증해 판목을 만드신 분이라. 우리 할아버지 되시는 거지.”

“최씨 할머니 열행비 가 봤어? 거기 이야기 들어 봤어? 옛날에 할머니께서 시집을 올 때 말이지. 전쟁이 터져서 말이야…….”

마을 회관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모습은 우리네 친할머니와 같고, 마을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얘기해 주시는 모습은 영락없는 원터마을 문화유산해설사 모습이다.

[영락없는 고아가 됐던 그때]

이자영 씨는 무티실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19세 때 원터마을로 이사를 왔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9년간 중풍으로 누워만 있던 아버지로 인해 오롯이 가계를 잇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다는 사실이다. 결혼한 오빠가 있었지만 포수를 한다며 나가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으로 오는 정도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막내딸인 그녀는 그런 어머니의 고충을 잘 몰랐다고 한다.

“……엊저녁에 엄마하고 얘기하고 나는 우리 친구 집에 놀러를 가니깐, 친구 엄마가 고마 여기서 자고 가라 그래요. 그래서 자고 아침에 오니깐 화로 곁에 있어야 할 엄마가 보이지 않는 거라. 방에 누워 있는데 ‘어매요, 해가 중천에 떴는데 왜 안 일어나소’라고 하며 흔드니깐 숨을 내쉬면서 발이랑 쪽 뻗더라고. 돌아가신 거라. 말 한 마디 못하고.”

한순간에 어머니를 잃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아련한지, 이자영 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중풍을 앓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보름 만에 세상을 등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한순간에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만날 넋을 빼고 앉아 있으니 숙모도 안됐다고 그러지. 오빠도 보기 그랬는지 고마 집을 팔고 원터로 이사를 왔어. 나 열아홉 살에…….”

이것이 그녀가 원터마을로 오게 된 계기다.

[한 마을에서의 결혼]

원터마을에서 산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중신(中媒)이 들어왔다. 같은 마을에 있는 최씨 일가의 중신이었다. 부모도 없고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아버지 4형제의 인심을 알고는 남편이 직접 중신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우리 아저씨가 날 돌라 캤는기라. 삼촌들한테. 가기 전에 오빠가 그러더라고. 날 앉혀 놓고 ‘그 집으로 가면 시집은 좀 힘들기다. 신랑은 좋은데 시어머니가 엄해서 살기가 조금 고달플 거다.’ 그러면서 시집을 보냈다고.”

시아버지는 ‘청심(淸心)’이라 마음이 좋았지만 깐깐하신 시어머니 때문에 말도 못하게 힘든 시집살이를 30년 가까이 해 왔다고 이자영 씨는 말했다. 임신한 동안 밭일을 했던 이야기, 아들을 낳지 못해 힘들었던 생활,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 미처 배우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호통을 쳤던 시어머니가 정말로 미웠다고 한다. 친정이 같은 마을이다 보니 힘들 때 뛰쳐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에 견뎌온 세월이라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돼서는 날 앉혀 놓고, 내가 너한테 너무 못할 짓을 했다면서 사과를 하더라. 내가 꾸준했거든. 암만 나를 힘들게 해도 나는 항상 꾸준하게 뒷바라지를 해 왔으니 고맙지.”

[남편 고향이 곧 내 고향]

1992년 남편이 60세 되던 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이자영 씨는 18년이 지난 지금[2010년]까지 홀로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외롭지 않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랐으며 결혼까지 해서 70년을 함께해 온 마을이다. 같은 일가가 함께 살다 보니 모두가 자매고 가족이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살았던 곳이라 원터마을에 대한 애정도 어느 누구 못지않다.

“고향에서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감사하지. 죽어도 내 고향에서 죽어야지. 내 고향이 남편 고향이고 그래서 또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정보제공]

  • •  이자영(여, 1935년생,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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