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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를 찾아 산골 마을로 모이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C020101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해인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재민

[해인동의 골드러시(Gold-Rush)]

백두대간 삼도봉 아래 오지 마을 중 하나였던 해인리 해인동에도 밀려드는 사람으로 북적이던 때가 있었다. 근래 교통이 좋아져서야 사람들의 발길이 시작되었을 것 같은 이곳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을까?

1940년에서 1950년 후반까지 사람들은 금빛을 따라 해인동으로 몰려들었다. 김용원[1947년생] 씨에 따르면, 1940년대 해인동은 인근 자연 마을인 대야, 숙질과 함께 경상북도에서 유명한 금이 나오는 ‘금광마을’이었다고 한다.

“그기, 언젠고 하믄…… 왜정 때야, 왜정 때. 해방되고도 했어. 해방되고 자유당 시절에 여기 광산 주인들이 막 직원들 고용해 가지고 그랬단께[채굴 사업을 하였다]……. 여기[해인동]가 금 빻는 곳[금 방아터]이 있제? 그게 1호부터 9호까지 있었어.”

해인동에서 금광이 개발된 시기는 1940년대 초반이다.

당시 해인동은 금이 많이 채굴되는 ‘금광마을’로 명성을 떨쳤다.

금광 개발에 따른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10여 가구 조용한 산골 마을은 50여 호가 넘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정인규[1938년생] 씨가 말해 준다.

“그때는 여기 마실[마을]에 한 50호 되었어. 그때 마실 상당히 컸지. 마실에 사람들도 많았고, 금광이 있었응께, 밖에서 그거 팔려고[채굴하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렇게 금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자연스럽게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생겨났다고 서수생[1936년생] 씨도 한마디 거든다.

“여기 주점이 있었어. 거기 기생들도 있고 그랬었는데, 이 마실에 한 3호 정도 되었지 싶다.”

금광에서 하루 종일 금을 캤던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술을 들이켰다. 그리하여 한 개의 주막[주점]으로 부족하여 작은 마을에 세 곳이 넘는 주막이 속속 생겨났고, 밤마다 이곳에서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날이 새는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금광에 따른 골드러시(Gold-Rush)는 오래 가지 않았다. 1940년부터 시작된 금광 채굴은 1945년 해방과 함께 금광 개발 자본이 끊기면서 잠시 중단되었다.

중단되었던 금광 채굴은 6·25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금광 채굴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채굴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중단되었던 금광 채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5년간 공백을 깨고 시작된 금광 채굴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채굴 초기엔 많은 양의 금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양이 줄어들고, 결국은 채굴에 따른 손실액이 커지자 1958년경 금광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금빛 추억을 되새기며]

2011년 현재 해인동에서 금광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금광 채굴로 인해 북적였던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금을 쫓아왔던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며 금빛 미래를 꿈꿨던 금광과 금을 찧던 방아는 흔적으로만 전해진다.

그러나 추억으로만 머물던 금광 이야기가 2010년 수면으로 떠올랐다. 금광으로 유명했던 당시를 추억하며 김천시에서 ‘노다지 축제’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김천의 지명이 ‘금이 솟아나는 샘’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1940년대 경상북도 일대 중요한 금광 채굴지로서의 명성을 축제로 풀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논의가 오가고 있는 ‘노다지 축제’는, 현재 김천 지역에서 금이 채굴되지 않는 것과 함께 고가의 금을 외부에서 들여올 경우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반대의 입장도 있다. 그럼에도 잊혀진 과거의 사실을 축제로 이끌고 김천 지역에 대한 이미지 재고를 위한 목적으로 ‘노다지 축제’는 개최될 예정이다. 사금 채취, 금광 체험 행사, 황금마차와 도금버스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축제를 풍성하게 할 계획이다.

1940년대 소설같이 전해지던 해인동의 금광 이야기가 2011년 축제가 되어 사람들에게 아련한 금빛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보제공]

  • •  숙굴댁(여, 1925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 •  서수생(남, 1936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 •  정인규(남, 1938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 •  김용원(남, 1947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해인산장 운영)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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