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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C030201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251-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재민

2010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마을 조사를 진행하는 도중 이윤호[1957년생] 씨와 만나게 됐는데, 반갑게 악수를 하다 보니 이윤호 씨의 검붉은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손, 이거 요즘 복분자 딴다고 정신이 없어서.”

귀농한 지 올해 5년 차인 이윤호 씨는 해인리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으로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창에서 태어나 해인리로]

이윤호 씨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복분자의 최대 고장이라 할 수 있는 고창에서 태어난 것으로 봤을 때, 복분자와 이윤호 씨는 태어날 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윤호 씨는 재력가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한의업에 종사한 아버지를 따라 열한 살 때 해인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버지가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어. 그래서 우연히 여기 와 보더니, 마을에 한의학과 관련된 약초가 너무 많다는 거야. 그래서 이 마실[마을]에 들어왔지.”

1968년 마을에 들어온 이윤호 씨는 유년 시절을 마을에서 보내고, 1972년 농사가 짓기 싫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산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여동생의 중매를 통해 안영숙[1961년생] 씨와 혼인을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패가 부른 값진 성공]

사업을 시작한 이윤호 씨는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2001년 다시 해인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이윤호 씨는 주위에서 “소를 먹이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자신의 소신대로 개를 구입하여 키우게 되었다. 순종 진돗개 12마리를 비싼 가격에 구입했으나,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 인식이 나빠짐에 따라 자연스레 개 가격도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개 가격이 형편없이 내려가자 이윤호 씨는 개 키우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하하 엄청나게 벌었제. 많이 벌었제. 하하하. 처음에는 12마리였는데, 새끼를 놓으면서 120마리가 되었어요. 그래서 한 마리가 짖으면 모두 다 짖기 때문에 굉장히 시끄러웠어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운 것은 ‘젊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 시끄러운가 보다’라고 생각해 줘서, 나한테 시끄럽다고 뭐라 하는[야단치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그 후 이윤호 씨는 집은 해인리에 있으면서, 다시 김천 시내에 있는 건설 회사에 다니게 된다. 워낙 손재주가 좋았던데다 성실함과 책임감까지 갖추고 있어 경제적인 실패를 만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안정적이고 꽤 괜찮을 수 있었던 직장 생활도 그만두게 되고 또다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붉은 열정을 손에 머금고]

산골마을 해인리에서 오미자를 재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이윤호 씨는 오미자의 수익성과 사전 지식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몇몇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주민들을 끝까지 설득하여 오미자작목반을 만들고, 나아가 김천시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분주히 뛰어다니면서 직접 판로를 개척하고 인터넷으로 판매를 하는 등, 숱한 노력의 결과 이윤호 씨는 해마다 수확량을 늘려 가며 김천시를 대표하는 젊은 농사꾼이 되었다.

이윤호 씨는 오미자 외에도, 복분자와 천마, 토종 벌꿀, 호두 등 다수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며 경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비로소 이윤호 씨의 ‘귀농’이란 선택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2007년 마을가꾸기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오미자터널을 만들고 절터를 복원하고 서낭당과 산제당은 물론이고 마을 담벼락을 보수하며 김천시에서 주관하는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도전했지만 아쉬운 실패를 경험했던 이윤호 씨.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2년 뒤에 다시 도전할 겁니다. 해인리가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되는 거예요. 마을가꾸기 그거는 제가 해인리 마을 주민들에게 받았던 것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이윤호 씨는 많은 선택을 했고 실패도 많이 해 봤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해인리 주민들과 더욱 돈독해지는 등 정신적으로 안정을 얻기도 하였다. 지금 이윤호 씨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붉은빛의 오미자와 더불어 힘든 시기에 항상 그와 함께 하는 마을 주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제공]

  • •  이윤호(남, 1957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삼도봉오미자농장 운영)
[참고문헌]
  • 삼도봉오미자농원(http://www.samdob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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