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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94
한자 金尙俊
영어음역 Gim Sangj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용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916년 12월 10일연표보기
활동 1943년 8월 29일연표보기
활동 1944년 2월연표보기
추모 1977년연표보기
추모 1990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용암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김천
활동지 중국|인도 등
묘소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대원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상준(金尙俊)은 1916년 12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용암리에서 태어났다. 1937년 7월 7일 일제가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이 확대되자, 1938년 조선혁명자연맹에서 한국의 열혈 청년들을 모두 규합한 뒤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편성하였다. 대장 나월환을 중심으로 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결사적인 대원 모집 활동에 참여한 김상준은 시안[西安]의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의 한국청년간부훈련반에 들어가 훈련을 받았다. 김상준이 속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41년 1월 1일 상해임시정부에 합류해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중국의 전시간부훈련반에서 1년간 훈련을 받고 낙양(洛陽)과 정주(鄭州)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43년 한국광복군과 영국군 사이에 한영군사상호협정이 체결되어 인도와 미얀마 지역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광복군이 참여하게 되자, 김상준은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工作隊) 대원으로 선발되었다. 이후 김상준은 현지 파견에 앞서 기초적인 적응 훈련을 받기 위해 다른 대원과 함께 중국군사위원회에서 3주간 교육을 받았고, 교육을 마친 다른 8명의 대원들과 함께 1943년 8월 29일 인도 콜카타로 파견되었다.

인도에 도착한 김상준 등은 콜카타와 델리 두 도시의 영국군 기지에서 대적 선전에 필요한 훈련을 받거나 대일 선전 방송을 담당했다. 인도와 미얀마 국경에 형성된 최전방에 투입되어 대적 선무 방송, 문서 번역, 포로 심문 등 특수 공작전을 전개하였다.

1944년 2월 김상준문응국·나동규 등과 함께 영국군 제4군단 사령부가 있던 ‘임팔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격전이 벌어지던 곳곳에서 대적 선무 방송, 투항 권유 전단 작성, 노획 문서 해독, 포로 심문 등 다양한 공작전을 수행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특히 미얀마의 티팀으로 진격 후 퇴각하는 과정에서 김상준 등 인면공작대원들은 일본군의 작전 문서를 분석하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영국군의 무사 귀환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임팔에서의 활동 후 김상준은 최봉진·이영수와 함께 미얀마 중부 지역을 우회하여 만달래이를 향해 북상하는 부대에 참여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 인면공작대 9명 전원은 미얀마 탈환 작전이 종료된 후 인도 콜카타로 철수하였다. 대원들은 이곳에서 8·15광복을 맞이했고, 1945년 9월 10일 콜카타에서 중경으로 무사히 귀환함으로써 2년간에 걸친 인면전구공작대 작전을 종료하였다.

[묘소]

묘소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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