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배(金元培)는 1897년 11월 17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김원득(金元得)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9일 김원배는 황금동교회의 조사 김충한과 장로 최용수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 계획에 참여한 후, 주남태와 함께 시위에 필요한 종이 태극기 제작을 담당하였다. 김원배는 거사 전날 종이로 태극기를 제작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회자. 박내영(朴來英)은 1873년 2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351번지에서 태어났다. 박영조(朴永祚)로도 불렸다. 191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김천 황금동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1918년 경주읍에 있는 도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 시...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사. 유진성(兪鎭成)은 1879년 경상북도 금릉군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에 입교한 유진성은 1911년 김천군 지례면[현 김천시 지례면]에 있는 파천교회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1916년경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예수교회의...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응수(李應洙)는 1879년 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번지에서 일제 침략에 상소 운동으로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성석(醒石) 이건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국권을 찾지 못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이응수는 3·1운동 때는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5개월간...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수(崔龍洙)는 1865년 10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74-1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천 황금동교회 장로였던 최용수는 1919년 3월 9일 황금동교회에서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를 경험하고 돌아온 같은 교회 조사(助師) 김충한과 대구 지역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김천으로 온 김수길 등과 만나 김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