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락
-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로부터 학맥을 이어받은 김종직(金宗直)은 58세 때인 1489년(성종 20)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아내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임지[개령현감] 따라 면학하던 곳이요, 아내와 아들 김목아(金木兒)가 묻혀 있어 가장 애착이 가는 김천의 백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서당인 경렴당(景濂堂)을 짓고 평소 공부하던 경서(經書) 등 천 권의 서책을 옮겨 학문 강론의...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정자. 김천시내로부터 거창 방면 국도 3호선을 따라 가다가 양천동에서 성주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5㎞ 지점에 위치한 조마면 신안4리 외신마을의 뒷산인 기산(箕山)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외신마을은 김천의 대표적인 화순 최씨 집성촌으로, 남애정을 비롯해 안영사(安影祠), 구재서원(懼齋書院), 백원당(百源堂), 남애선생 강...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집. 누정(樓亭)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써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 환경에 부합되는 가장 자연 친화적이며 한국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자연 경관을...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4리에 있는 화순최씨 집성 마을. 신안리는 조선 말기 김산군 조마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죽정(竹汀)·신동·구미(龜尾)·지동·신하(新下)·안서·신기·신촌이 통합되어 김천군 조마면 신안동으로 개편되면서 생긴 이름이다, 조마면 신안4리 안서동(安棲洞)은 화순최씨 부정공파(副正公派) 집성촌으로 12세손 최세영(崔世英)이...
-
1880년 현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안서동의 동민들이 풍속 교화를 위해 만든 동약(洞約). 임진왜란 전까지 각 촌락에서는 사족 중심의 ‘동계(洞契)’가 존재하였다. 이는 일동의 동민이 일정한 규약을 통해 형성한 인위적인 조직으로 ‘족계(族契)’, 혹은 ‘동약’이라고 불렀다. 동계의 기능은 사족의 상부상조와 이를 통한 촌락 하층민의 통제에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경과하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범구(範九), 호는 남애(南涯). 증조할아버지는 최하대이고, 아버지는 최성수이다. 아들로 김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을 두었다. 최창락(崔昌洛)[1832~1886]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12월 김천시 안서동[현 조마면 신안리]에서 동민들과 함께 마을의 규...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은 1862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639번지에서 한학자인 남애(南厓) 최창락(崔昌洛)[1832~186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익길(崔益吉) 또는 최학광(崔鶴光)으로도 불렸다. 18세에 아버지 최창락을 따라 성재(性齋) 허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족형인 양오(陽梧) 최봉길(崔鳳吉)[1853...
-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등을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크게 정부 기관과 지방 자치 기관, 민간단체, 향토지 간행을 위한 임시 조직체 또는 개인이 간행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김천 지역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책은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인데, ‘김산군 편·지례현 편·개령현 편’에 김천 지역...
-
최세기(崔世基)를 시조로 하고 최원지(崔元之)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화순최씨는 고려 중기 항몽전쟁 때 전라도안렴사로 공을 세워 오산군(烏山君)에 봉군된 최세기를 시조로 하고 평장사(平章事) 최계(崔桂)를 중시조로 한다. 오산은 화순(和順)의 옛 지명으로 최세기가 전라도 화순에 정착하면서 본관을 화순으로 삼았다. 김천 지역의 화순최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