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 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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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서 감천을 보면 빛이 밝게 반사되는 것에 착안하여 밝은 빛과 같이 마을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광명(光明)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과곡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기로(耆老)[일명 기월(耆月), 기를]·배평(排坪)[일명 바랫들]·광천·내방[일명 옴배미]·듬마루·봉대가 통합되어 김천군 과곡면 광명동으로 개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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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교동(校洞)·옥전동·정변동·구교동(舊校洞)을 통합하면서 개령면사무소 동쪽에 있으므로 동부동(東部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부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동·옥전동·정변동·구교동이 통합되어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개령면 동부동으로 개칭하였다. 1971년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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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김산군 천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20년 마존(麻存)·동리(東里)·좌동(佐洞)이 통합되어 김천군 아천면 동좌동으로 개편되었고,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어모면 관할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동좌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어모면 동좌리가 되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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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지역의 열녀. 성산 배씨 집안은 ‘삼강세가(三綱世家)’라 일컬을 만큼 열부, 충신을 여럿 배출하였다. 배인범(裵仁範)과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아들로 효숙공(孝肅公) 배흥립(裵興立)과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배의범(裵義範)을 두었다. 셋째 손자 배시량(裵時亮)은 1630년(인조 8) 무과에 장원 급제한 후 양주목사, 도총부부총관, 경상·충청·전라 삼도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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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난 것인데, 처음에는 왕실 내지 귀족, 고급 관료층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개국과 국가 변란에 혁혁한 공을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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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동(新洞)의 ‘신(新)’자와 안서(安棲)의 ‘안(安)’자를 따서 신안동(新安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조마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죽정(竹汀)·신동·구미(龜尾)·지동·신하(新下)·안서·신기·신촌이 통합되어 김천군 조마면 신안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조마면 신안동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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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烈女)는 위급함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거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를 ‘열부(烈婦)’라고도 한다. 김천 지역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택한 열부가 많이 배출되었다. 이것은 김천이 역사적으로 교통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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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윤칙(允則).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용담현령 이검송(李儉松)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근동(李根東)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이며, 부인은 성산 배씨이다.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삼남은 통정대부 이은계(李殷繼)이고 사남은 첨정 이은확(李殷確)이다. 이언의(李彦儀)[1600~1637]는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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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추현(秋峴)[일명 가릇재]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가래실이라 하고 한자로 추량(秋良)으로 표기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하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가래실·솔밭골·지푸이·주막담이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추량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추량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가래실이 추량1리, 솔밭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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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효자는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기는 자식을 일컫는다. 김천은 예로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효자, 효부, 효녀를 배출했는데 이에 수반된 정려각, 효행비 등의 유적이 다수 남아 있으며 큰 효자를 배출하여 마을 지명이 효자동으로 개명된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김천 지역 효자, 효부, 효녀에 대한 기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