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천시 지좌동에 있는 19세 미만 범죄 관련 수용자들을 관리하는 국가 교정 시설. 김천소년교도소는 소년 수형자를 성인 수형자와 분리 수용함으로써 수용자의 과학적 분류와 합리적인 교정 교육을 도모하고, 성인 수형자와의 접촉으로 인한 소년 수형자의 악 감화를 방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김천소년교도소는 1921년 3월 25일 김천시 평화동 245...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회자. 박내영(朴來英)은 1873년 2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351번지에서 태어났다. 박영조(朴永祚)로도 불렸다. 191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김천 황금동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1918년 경주읍에 있는 도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 시...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안(朴泰安)은 1898년 6월 14일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小舍)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은 황금정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 같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와 함께 김...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응수(李應洙)는 1879년 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번지에서 일제 침략에 상소 운동으로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성석(醒石) 이건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국권을 찾지 못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이응수는 3·1운동 때는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5개월간...
1921년 김천공립보통학교 학생 임원성이 일본군 헌병 분대에 보낸 편지로 인해 일어난 사건. 1921년 2월 4일 김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김천초등학교] 2학년생[당시 17세] 임원성이 ‘대한 독립 만세 일본 패망’이라고 쓴 글을 박문학이라는 가명으로 일본군 헌병 분대에 보냈다. 이 투서를 임원성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서소에서 사용하는 용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에 적발되었다...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은 1907년 9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업이(林業伊), 임기업(林基業), 임송춘(林松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임종업은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3년 4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환진(鄭晥鎭)은 1927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10번지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증에 수록된 이름은 정완진이다. 공훈전자사료관 포상자 공적조서에는 정환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3년 5월 대구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상호·김상길·서상교 등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 태극단에 가입하여 정회원으로...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수(崔龍洙)는 1865년 10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74-1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천 황금동교회 장로였던 최용수는 1919년 3월 9일 황금동교회에서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를 경험하고 돌아온 같은 교회 조사(助師) 김충한과 대구 지역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김천으로 온 김수길 등과 만나 김천 지...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명수(韓明洙)는 1893년 1월 1일 김천시 황금동 18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로 있던 27세의 한명수는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같은 교회 조사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같은 교회 장로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