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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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풍국(鄭豊國)을 시조로 하고 정붕(鄭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경주정씨의 원 시조는 신라 건국 초기 6촌(村)의 한 부장인 지백호(智伯虎)로서 정씨 성은 뒤에 사성(賜姓)된 것이다. 30세(世)에 이르러 정풍국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32세에 이르러 후손들이 영일과 동래로 본관을 나누었다. 김천 지역의 경주정씨는 조선 개국공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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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있던 양잠 전습소. 1912년 무렵 김천의 시로이유[城井惟隆]가 지방비를 보조받아 금릉면(金陵面)에 사립 양잠전습소(養蠶傳習所)를 설립하고 군내 양잠업자의 자제들이 6개월을 교육 기간으로 하여 뽕나무의 재배와 양성 및 잠종 제조법에 관해 전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1915년에 이르러 당국이 은사수산비(恩賜授産費)로 사립 양잠전습소를 사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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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은 3·1운동 이후인 1920년 9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비밀리에 조직되어 1922년 일제 관헌 당국에 탄압을 받을 때 까지 활동한 독립 운동 단체이다. 주요 활동은 독립 운동 자금과 독립 운동 활동가를 모집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주요 인물은 김찬규(金燦奎)·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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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특유한 언어나 언어적 용법. 방언은 어느 지역의 보편화된 언어 체계로 표준어나 다른 지역 언어와 달라진 김천 지역의 말이다. 이를 ‘김천 사투리’라고도 한다. 김천시 지역 방언권은 크게는 경상도[영남] 방언권에 속하고 그 가운데 경상북도 방언권에 속한다. 이는 다시 세 개의 하위 방언권으로 세분된다. 하나는 경주·영천·대구·영일·청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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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에 있는, 강민첨을 기리기 위한 일제 강점기의 사당. 강민첨(姜民瞻)[?~1021]은 고려 목종(穆宗) 때 과거에 급제한 문신이며, 명장이다. 1012년(현종 3) 안찰사(按察使)[고려 때의 지방 장관]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 온 동여진(東女眞)을 무찌르고, 1018년(현종 9)에는 강감찬(姜邯瓚)의 부장으로서 흥화진(興化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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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균(李明均)[또는 李銘均]은 186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조선 성종 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충간공 이숭원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일괴(一槐)이다. 가학(家學)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절치부심하던 이명균은 대한광복회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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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로 노비 해방을 실천한 인물.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구암(懼庵). 아버지는 정박(鄭璞)이다. 아들은 정사기(鄭師沂)와 정량수를 두었고 손자로는 정혐(鄭馦)이 있다. 정혐은 1789년(정조 13) 식년시에 급제하여 할아버지의 명성과 가세를 이어갔다. 정만용(鄭萬容)은 1682년(숙종 8)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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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보(仲輔), 호는 천방자(天方子)·수옹(睡翁).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鼐臣)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생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사위이다. 정유성(鄭維城)[1569~1645]은 총명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촉망받던 제자로, 율곡의 학통을 이을 기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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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서룡(鄭瑞龍), 자는 인보(仁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乃臣)이다. 정유한(鄭維翰)[1568~1640]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다. 13세에 시구(詩句)를 맺을 줄 알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나서 일어서지를 못할 때 삼촌과 함께 병간호에 치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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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찰방 이대유(李大有)이다. 정유한(鄭維翰) 처 이씨(李氏)[1570~1597]는 14세에 영일 정씨 집안의 정유한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예모 있는 행동거지로 집안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8일, 왜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쫓겨 충청북도 괴산에서 흑운산(黑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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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 있는 정일 부부의 정려각. 영일 사람인 진사 정일(鄭鎰)의 자는 경중(輕重), 호는 송암(松巖)인데, 1556년(명종 11) 2월 16일 영일 정씨 정사신(鄭思信)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3년간 죽만 먹으며 애도하여 널리 효자로 이름이 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정일은 움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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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천문 역학자. 정환덕(鄭煥悳)은 복술(卜術)에 능한 천문 역학자로 개항기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을 지냈는데,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 차장 정도에 해당하는 직책이었다. 정환덕은 1857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퇴산이다. 1902년 1월 14일 현릉참봉[판임관 8등]에 임명되었으나 다음날 사임하였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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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상보. 증조할아버지는 정내신, 할아버지는 정유한(鄭維翰)[1568~1640]이다. 정유한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자동에서 김산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정후상(鄭后相)[1649~1715]은 할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아 의협심이 강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겼다. 숙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