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가.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중학교 , 김천고등학교 ]가 최송설당 등 조선인에 의해 설립되자, 김천 경제를 좌우하던 일본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대일본부인회 김천분회장 이와다(岩田) 는 김천 , 상주 , 선산 등지의 대일본부인회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답지 않은...
...), 1927년 5월 사법서사회 회장에 뽑혔다. 1930년 2월 송설당교육재단 및 김천중학교 창립 상무를 수임하였고, 4월 김천군 학교 평의원에 피선되었다. 최송설당 이 1930년 32만 원이란 거금을 내놓아 김천공립보통학교 [현 김천고등학교 ]를 설립할 당시 김천 유지인 이한기 를 불러 학교 설립의 뜻을 밝혔다. 이한기...
...21일 종2품 시종원부경[칙임관 3등]이 되었다. 저서로 『남가록』 을 남겼다. 정환덕 이 고종 과 순종 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인물인 만큼 『남가록』 에는 정사에는 나오지 않는 궁중 비사가 풍부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김천 지역의 대표적 인물인 최송설당 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으나 정사가 아닌 궁중 비사인 만큼 신뢰도는 떨어진다.
...다고 한다. 1931년 4월 정열모 는 김천 에서 설립된 사립 김천고등보통학교 의 교무주임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천고등보통학교 는 영친왕 의 보모 출신인 최송설당 이 재산을 기부하여 설립한 학교였다. 그는 김천고등보통학교 에서 교무주임으로 근무하면서 조선어와 조선사와 수신을 강의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32년 1월 김천고등...
.... 당시 집행위원회에서는 고등보통학교 설립 기금을 30만 원으로 정하고 면과 리·동까지 확대했으나 사업 추진이 여의치 못했다. 이후 1930년 2월 23일 서울 에 살던 최송설당 이 재산 관리인 이한기 를 통해 고등보통학교 설립 기금으로 32만 원을 투척한다고 밝혔으나 조선총독부 의 한국인 교육 억제책으로 인문계 학교 설립 허가를 하지 않아 ...
...일본인들이 두 파로 갈리어 사사건건 대립해 결국 실업학교 설립 제안은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중학교 , 김천고등학교 ]가 최송설당 등 조선인에 의해 설립되자, 이에 자극을 받은 김천 의 일본인들이 실업계 중등학교 설립을 서둘렀다. 당시 타이헤이 가 농업 및 임업 계통 실업학교를 설립하려고 진행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