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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78
한자 立石里
영어음역 Ipse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입석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06년연표보기
변천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6.4㎢
가구수 219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483명(남자 260명, 여자 223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에 돌부처가 있어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용암리 방면에서 들어오는 마을 옛 진입로가 있는 북천산 자락에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영조김해 김씨 김우선(金宇善)이 상주에서 이주한 데 이어 경주 이씨 일가가 정착하면서 현재의 입석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는 개령군 농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 김산군 연명면 입석동이 되었고, 1914년 연명면이 농소면에 폐합됨에 따라 김천군 농소면 입석동이 되었다. 1949년 금릉군 농소면 입석동으로 개칭하였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입석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농소면 입석리가 되었다.

[현황]

입석리는 면 소재지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남동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6.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19세대에 483명(남자 260명, 여자 22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남면 운곡리, 서쪽으로 용암리·월곡리, 남쪽으로 연명리, 북쪽으로 월곡리남면 옥산리와 이웃하고 있다. 율곡천이 마을을 관통하고 하천 변에 수락들·애마미들·지저지들·대추마리들 등 비옥한 평야가 많아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자두와 사과를 많이 재배한다. 또 콩을 많이 재배해 입석메주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문화 유적으로는 입석리 고분군, 신라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약사여래불은 원래 북천산 끝에 밤실 쪽을 향해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의 방향과 관련해 밤실 등 이웃한 마을들과 논란이 있자 일제 강점기에 마을회관 옆으로 옮겼고 십 수 년 전 회관 창고를 지으면서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허리 이하 부분이 콘크리트에 가려져 원래의 크기와 하반신의 형태를 확인할 길이 없고, 6·25전쟁 중 총격을 받아 두상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애말리·선돌·새터·건너마·꿀배미 등이 있으며 경주 이씨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새터는 1936년 수해 때 인근 율곡천의 범람으로 입석 일대가 침수되어 마을이 대파되자 주민들이 지대가 높은 앞산 양지쪽으로 대거 이주하여 새로 마을을 이루어 붙인 이름이다. 애말리는 팔미(八味) 또는 달배이라고도 한다. 마을 인근 들판에서 달팽이가 많이 나와 달팽이라고 부르던 것이 음이 변하여 달배이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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