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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86
한자 雲谷里
영어음역 Un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4.06㎢
가구수 202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458명(남자 227명, 여자 23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운양(雲陽)의 ‘운(雲)’자와 둔곡(屯谷)의 ‘곡(谷)’자를 따서 운곡(雲谷)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운양·둔곡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운곡동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남면 운곡동으로 개칭하였다. 1971년 둔곡이 운곡1동, 운양이 운곡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운곡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남면 운곡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남쪽에 비백산, 북쪽에 진골산과 운남산이 솟아 있다. 조가밭골 인근에는 장군바위 또는 벼락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어느 장군이 자신의 손발과 타고 다니던 말의 발자국을 새겨 두고 갔다고 한다.

[현황]

운곡리남면 소재지인 옥산리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대구 방향으로 약 3㎞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4.06㎢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02세대에 458명(남자 227명, 여자 2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송곡리, 남쪽으로 입석리, 북쪽으로 운남리와 이웃하고 있다. 운곡1리·운곡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천 최대의 장흥 위씨(長興魏氏) 집성촌이다. 도로변에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하며, 문화 유적으로는 장흥 위씨 문중 재실인 관산재(冠山齋), 위대홍(魏大弘) 신도비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운양·등골[登谷] 등이 있다. 등골은 장흥 위씨 부장공파(副將公派) 집성촌으로 유명하다. 마을에 처음 장흥 위씨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직후인 1590년대 말로 전란 때 이순신 장군의 부장으로 큰 활약을 펼쳤던 위대홍 장군이 전국의 명당을 물색하던 중 마을 앞에 이르러 운남산의 산세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임을 간파하고 후손의 번성을 바라며 정착했다고 한다. 장흥 위씨가 들어오기 전까지 마씨(馬氏)와 조씨(趙氏)가 살았다고도 하는데 마을 뒷산 골짜기의 조가밭골에는 조씨들이 살면서 나막신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부상역(扶桑驛)의 관리들과 인근에 주둔하던 군사들에게 지급되는 둔전(屯田)이 있어 둔골[屯谷]이라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하여 등골이 되었다. 마을에 운곡초등학교가 있다. 운양은 운남산 아래 양지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등골에서 국도 4호선과 운곡천을 건너 맞은편 운남산 자락에 있으며 경주 이씨와 나주 임씨들이 세거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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