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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리[감천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45
한자 龍虎里-甘川面-
영어음역 Yongho-ri[Gamcheon-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용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82㎢
가구수 166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367명(남자 177명, 여자 190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복룡(伏龍)의 ‘용(龍)’자와 복호(伏虎)의 ‘호(虎)’자를 따서 용호동(龍虎洞)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성주군 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복룡·매화·입암·복호·상평·하평이 통합되어 김천군 감천면 용호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용호1동·용호2동으로 분동되면서 금릉군 감천면 용호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용호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감천면 용호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앞에 뒤로 만 리, 앞으로 만 리나 된다는 진만리들이 펼쳐져 있다. 옛날 들판이 넓다는 소문이 나서 한양의 고관들이 말을 타고 와 구경을 하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마을에서 마주보이는 동쪽 고당산 자락 영골에는 왕가(王家)의 태를 안치했다는 태봉(胎封)이 있다. 높이 50m 남짓한 야산으로 형태가 반듯하고 고당산 지맥이 복룡으로 흘러오다가 혈이 맺힌 명당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태봉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황]

용호리감천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3.8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66세대에 367명(남자 177명, 여자 1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무안리, 서쪽으로 남천을 사이에 두고 조마면 삼산리, 북쪽으로 무안천을 사이에 두고 도평리와 이웃하고 있다. 용호1리·용호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녕 김씨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으로 국도 59호선이 지나고, 소하천 주변으로 비옥한 토지가 많아 벼농사를 주로 지었고 최근에는 참외를 많이 경작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용호리의 명물인 선바위는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 과거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며 신성시했는데, 1936년 수해 때 마을 앞 대방천이 범람해 바위가 묻힌 이래 마을에 변고가 잦아지자 1940년대 말 당초보다 작게 새로 돌을 세웠다.

자연 마을로는 복룡·매화·입암 등이 있다. 복룡은 1670년경 경주 최씨 일가가 들어와 서쪽 구릉지에 마을을 개척하고 살면서 마을이 연꽃의 중심에 해당한다 하여 화심(花心)이라 일컬었다. 뒤에 김해 김씨 일가가 옮겨 와 본격적으로 마을이 커지면서 마을 앞산의 형상이 용이 엎드려 있는 듯하여 복룡이라 하였다. 마을 앞에 큰 저수지가 있어 못골이라고도 하였다. 들 한가운데는 망태기처럼 생긴 망태샘이 있는데 근년에 관정이 개발되기 전까지 마을 일대 일곱 마지기 논에 물을 댄 것으로 유명하다.

매화는 복룡과 입암 사이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선조김녕 김씨 김연(金演)이 이거해 마을을 형성하면서 인근에 매화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새뜸이라고도 한다. 입암은 매화 위에 있는 마을로 1650년경 남평 문씨 문응서(文應瑞)가 칠곡 약목에서 이주해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 앞에 큰 바위가 서 있어 붙인 이름이다. 달리 선바위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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