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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30
한자 鄭鵬
영어음역 Jeong Bung
이칭/별칭 운정(雲程),신당(新堂),정청송(鄭靑松)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467년연표보기
활동 1492년연표보기
활동 1500년연표보기
활동 1501년연표보기
활동 1502년연표보기
활동 1504년연표보기
활동 1504년연표보기
활동 1506년연표보기
몰년 1512년연표보기
활동 1512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관덕리 탄동 지도보기
유배|이배지 경상북도 영덕군
사당|배향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금오서원
사당|배향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초곡리 덕림서원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선산(善山)
대표 관직 청송부사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 본관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해주(海州)라고 기재되어 있다. 자는 운정(雲程), 호는 신당(新堂), 별칭은 정청송(鄭靑松). 할아버지는 정지운(鄭智耘)이고, 아버지는 정철견(鄭鐵堅)[휘는 성벽(成璧)]이다. 정철견은 조행이 탁월하여 성종 때에 함창현감(咸昌縣監)으로 징배(徵拜)되었다. 청송군수를 지내 정청송(鄭靑松)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외숙부는 김석견(金錫堅)이다. 아들로 생원(生員) 정의(鄭毅)가 있다. 딸은 승정원좌승지 신공(愼公)과 혼인하였다. 외가 친척에 연산군 시기 적개좌리공신(敵愾佐理功臣)을 지낸 유자광(柳子光)이 있다.

[활동 사항]

정붕(鄭鵬)[1467~1512]은 개령현 탄동[현 감문면 관덕리 탄동]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492년(성종 3) 문과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홍문관교리에 이르렀다. 1500년(연산군 6) 수찬(修撰), 1501년(연산군 7) 수사헌부지평, 1502년(연산군 8)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504년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갑자사화 때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으로 귀양을 갔다.

1506년 중종이 즉위하자 복관되어 상경하던 중 병으로 귀향하였다. 여러 차례 사헌부장령, 의정부검상, 교리(校理), 성균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선산 신당으로 이주하였다. 1512년(중종 7)에 청송부사가 되었다. 정붕의 제자로 『백록동규해(白鹿洞規解)』을 지은 송당 박영(朴英)[1471~1540]이 있다. 박영중종 때의 무신(武臣)으로 정붕에게 배우고 학문에 힘써 대학자가 된 인물이다. 『해동야언(海東野言)』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정붕에 대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마침내 정묘(精妙)한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금오서원과 김천시 남면 초곡리에 있던 덕림서원에 배향되었다. 남효온(南孝溫)이 당대 50여 명의 명사들에 대하여 기록한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 정붕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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