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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14
한자 兪鎭成
영어음역 Yu Jins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879년연표보기
활동 1911년연표보기
수학 1916년경연표보기
활동 1916년경연표보기
활동 1919년 8월연표보기
수학 1926년연표보기
활동 1928년연표보기
몰년 1949년연표보기
추모 1990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목사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참여|김천YMCA 초대 회장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사.

[활동 사항]

유진성(兪鎭成)은 1879년 경상북도 금릉군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에 입교한 유진성은 1911년 김천군 지례면[현 김천시 지례면]에 있는 파천교회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1916년경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예수교회의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말 유진성은 다른 지역에서의 만세 운동을 접하고 김재곤·김석규 등 다른 지역 개신교 신자들과 교회의 연합을 통한 만세 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다가 월항면의 이기정과 초전면의 송준필 등 지역 유림들이 4월 2일 장날을 이용해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3월 말 송회근을 만나 함께 시위를 일으키기로 협의하고 시위 당일 사용할 태극기의 제작을 송회근에게 부탁하였다. 이러한 유림 측과 개신교 측의 연합에 의한 시위 양상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 유진성은 1919년 8월 김천 지역에서 『신한별보』를 배포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 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유진성은 다시 평양신학교에 등록하여 1926년 졸업을 했다. 이후 유진성은 김천 지역의 복전교회·봉계교회·제석교회·송천교회와 대구 반야월교회 등에서 목사로 시무하는 한편, 3·1운동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어 오던 김천 지역 청년 운동에 참여하여 1928년 김천YMCA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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