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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82
한자 沈文
영어음역 Sim Mun
이칭/별칭 심상문(沈相文)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근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910년연표보기
활동 1927년연표보기
활동 1945년연표보기
활동 1946년 이후연표보기
활동 1948년연표보기
활동 1948년연표보기
출생지 서울
성격 정치인
성별
대표 경력 신간회 김천지회 집행위원장|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김천YMCA 회장|금릉군수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지도자.

[개설]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를 내세워 권태희가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씨 파에서 정열모를, 심씨 파에서 권태희를 지원했으나 여당 심파 측의 노골적인 탄압에 굴복하여 고씨파의 정열모가 입후보를 사퇴하여 제3자인 우문(禹文)이 당선되었다.

[활동 사항]

심문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심상문(沈相文)이다. 경성법학전문학교와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김천 지역에 정착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1927년 신간회 김천지회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되고,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김천YMCA 회장, 김천공립중학교[현 김천중학교] 기성회장을 지냈다. 상공부 비서실장을 거쳐 1948년에는 김천군에서 분리된 금릉군수로 한 달 남짓 재직하다가 사임한 후 부산으로 이주하여 복산유아원을 경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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