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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507
한자 放送
영어음역 Bangsong
영어의미역 Broadcasting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우상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변천]

김천 지역에는 1950년대 초반부터 재건과 복구 사업이 진척되고 생활 형편이 차츰 호전됨에 따라 라디오 청취에 대한 욕구가 높아갔다. 처음에는 마을에 앰프와 수신기를 비치하고 배터리를 이용하여 각 가정에 전선을 연결하여 스피커로 라디오를 듣는 라디오 유선 방식이었음에도 가입자는 해마다 증가되는 추세였다.

1959년 10월에 최명국이 김천시 평화동에 라디오 방송 중계소를 설치하여 200여 개의 스피커를 시 외곽 지대 가정에 달아 라디오 중계를 해 왔는데 김천시에서 시정 홍보에 이용 가치가 있다 하여 1962년에 이를 26만 원에 매입해 시 직영으로 운영하기도 하였다. 1967년 7월에는 김천문화원에 운영을 위탁했다가 재정 문제 등으로 폐쇄하였다. 그러다 1965년 김천중계소 개소를 계기로 안정적인 라디오 청취가 가능해졌다.

KBS 김천중계소는 1965년 9월 23일 대구방송국 김천중계소라는 이름으로 김천시청 청사 내에서 개소하였다[호출 부호 : HLSK, 출력 : 50W, 주파수 : 1500㎑]. 1968년 7월 1일에는 김천시 교동 567번지 현재의 위치로 청사를 이전하고 출력을 1㎾로 증강했으며 1976년 6월 28일에는 예비 송신기[1㎾]를 설치하고 1978년 11월 2일에는 1503㎑로 주파수를 변경하였다. 당시 김천중계소는 경상북도 서북부 일대에 산재해 있는 산간 지역 청취자들을 위해 연차적으로 그 지역 폭을 확대해 갔으며 자체 방송까지 실시하여 지역민의 의식 수준을 향상시키고 지역 문화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지역 유일의 방송 전파 매체 기관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1년 10월 21일 로컬 방송을 폐지하고 1992년 10월에는 송신기와 발전기[10㎾→20㎾]를 교체했으며 1995년 8월 31일 신청사 준공과 동시에 시설 자동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1999년부터 김천중계소의 관리와 운영은 구미송출운영센터에서 담당하게 되어 상주 인력이 철수하였다. 2002년에는 다시 자동화 설비가 보강되면서 구미송출운영센터에서도 인력이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텔레비전 방송의 경우 대구 팔공산에서 김천시 모암산 TVR로 전파를 재송신하여 김천 전역으로 전파를 송신하고 있는데 KBS TVR을 MBC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김천 지역은 난시청 지역으로 분류되어 일찍부터 유선 방송이 시작되었다. 1974년 3월 김종태가 사단법인 김천유선방송사를 설립하고 TBC, KBS, MBC 중계 송신을 개시한 이래 점차 지역을 넓혔으며 1999년에는 김천시 전역에 광케이블을 연결해 자체 제작 방송, 위성 중계 방송 등을 실시하였다.

2000년부터 김천유선방송사는 인터넷 및 부가 통신 사업으로 초고속 정보 통신망을 구축하기 시작했으며 2005년에는 정만기를 대표로 하는 우리넷방송으로 매각되어 김천, 상주, 구미, 칠곡, 고령, 성주, 군위 등 7개 시군을 관할하였다. 이어 우리넷방송은 2006년 구미에 본사를 둔 새로넷방송으로 매각되었다.

[현황]

라디오 방송의 경우 2002년부터 2021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KBS대구기술국 송출운영센터에서 김천 지역의 라디오 송출을 관리하고 있으며 텔레비전의 경우 김천시 모암동 송신탑[TVR]에서 대구 팔공산 송신탑[TVR]으로부터 받은 전파를 각 가정으로 보내주고 있다. 모암동 송신탑[TVR]은 김천시 신음동 달봉산으로 이전되었다. 유선 방송은 2021년 현재 새로넷방송이 김천, 상주, 구미, 칠곡, 고령, 성주, 군위 등 7개 시군을 관할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천시사』(김천시, 1999)
  • 인터뷰(KBS대구방송국 라디오기술팀장 김소룡, 남, 55세, 20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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