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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바위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657
한자 紗帽-
영어음역 Samobawi Iyagi
영어의미역 The Story of Samobawi Rock
이칭/별칭 사모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집필자 이균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1983년연표보기
수록|간행 1999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 지도보기
관련 지명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자산동]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북도 김천시 용암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자산동]
성격 전설|치우담|암석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김종직|역리|도승
모티프 유형 사모바위의 유래|역리의 명당 파손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용암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자산동] 사모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사모바위 이야기」는 사모와 흡사한 바위가 있어서 고관대작과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는 암석 유래담이자 어리석은 역리가 명당을 파손하였다는 치우담(癡愚譚)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사모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지명유래 및 설화]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하지만 『내고장 우리향토』에는 김종직(金宗直)[1431~1492]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

[내용]

김천시가의 중앙에 자리한 자산의 동쪽을 일명 모암산이라고도 한다. 옛날 모암산 동남쪽 꼭대기에 사모와 흡사한 바위가 있었는데, 이것을 사모바위[冠帽岩]라고 하였다.

조선조 초기 영남 사림파의 종주(宗主) 김종직이 이곳 배천마을에 살 때 김천은 문향(文鄕)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때 하로(賀老)[양천동(陽川洞)]에는 일시에 3판서 6좌랑이 났다 할 만큼 고관대작과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이들 고관대작의 출입에다 김종직을 찾아오는 선비들을 뒷바라지하는 김천역의 역리들은 밤낮없이 하루도 편히 지낼 날이 없어 괴롭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한 역리가 꿈을 꾸니 한 도승이 나타나 “괴로워할 것 없느니라. 사모바위만 없애면 편히 지낼 수 있으리라.” 하거늘, 동료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그 바위를 없애자고 하여 몰래 산 아래로 굴려서 떨어뜨렸다.

과연 그 이후로 이 지방에서는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로 사람들은 이를 원통히 여기고 산 밑에 떨어진 사모바위를 하로마을 어귀에 옮겨 놓고, 정월이면 “하로의 옛 영화를 되찾도록 정기를 내려 주소서.”라면서 동제를 지냈는데, 근래까지 동제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모바위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모티프 분석]

「사모바위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사모바위의 유래’, ‘역리의 명당 파손’ 등이다. 「사모바위 이야기」는 관모처럼 생긴 바위 모양이기에 사모바위라고 불렀다는 암석 유래담이고, 어리석은 역리 때문에 마을이 망했다는 일종의 풍수담이며, 옛날의 영화를 되찾도록 빌기 시작했다는 동제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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