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교동 유적지 유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83
한자 校洞遺蹟址遺物
영어음역 Gyo-dong Yujeokji
영어의미역 Relics from Gyeo-dong Historical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삼락동
시대 선사/청동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1996년연표보기
출토|발굴 1997년연표보기
제작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
현 소장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1000
출토|발견지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출토|발견지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성격 생활 유물
재질
소유자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관리자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삼락동에서 출토된 토기와 자기 등 생활 유물.

[개설]

교동 유적지 유물은 1996~1997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시행한 교동 택지개발지구[교동·삼락동]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생활 유물들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 관아와 객사, 군기 터 등이 있던 곳이다. 김천 지역에는 고려 후기인 1390년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지방의 공공 기관 제1서열과 제2서열의 위상을 지니고 있던 김산군(金山郡)의 객사와 관아가 여러 차례 소실과 중수, 이건, 중건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어져 왔다. 교동 유적지 유물은 그 과정에서 사용된 것이 폐기되었거나 인위적으로 파묻어 놓은 유물들이 출토된 것으로, 또한 건물 터보다 훨씬 이전인 선사 시대 유물도 출토되었다.

선사 시대 유물로는 무문 토기와 홍도·지석(砥石) 등이 출토되었고, 고려 시대 유물로는 청자와 흑갈유(黑褐釉) 토기·고려 백자·수막새·암막새 등이 출토되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 시대 유물은 분청자, 백자, 청화 백자, 수막새, 암막새, 부전(敷塼), 옹기, 어망추, 방추, 동전, 용도 미상의 철기류 등으로 모두 2,059점의 대표적인 유물들이 보고되었다. 이외에도 수십 톤에 이르는 유물들은 공원 부지 아래에 매몰한 후 상부에 안내 표지석을 세워 두었다.

[형태]

다종다양한 교동 유적지 유물 중에서 시기를 잘 반영하는 자기류로는 고려 시대의 햇무리굽 청자 대접, 청자 대접, 청자 화형 소완, 청자 소완, 철화 청자 병편, 청자 뚜껑, 청자 상감 국화문 팔각완, 녹청자[조질 청자] 대접과 접시 등으로, 12~13세기 대의 유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 시대의 분청자는 15세기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화문·포도문 등 다양한 문양과 중권문(重圈文) 인화 분청자, 흑·백 상감문 분청자, 분청자 제기, 귀얄문청자, ‘장흥고(長興庫)’·‘장흥고집용(長興庫執用)’·‘김산장흥고납(金山長興庫納)’·‘경승부(敬承府)’·‘경주인수부(慶州仁須府)’·‘경주장흥고(慶州長興庫)’·‘김산석전제(金山釋奠祭)’ 등의 명문 분청자들과 무분장(無紛装) 분청자 등이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다.

백자는 회백색·회청색·유백색 유조가 있으며, 잔·보시기·접시·대접·발(鉢)·호(壺)·병·뚜껑 등의 여러 기종이 출토되었다. 특히 다리가 3~4개 부착된 것과 상형(象形) 다리 등 제기용의 특수 기종과 굽 안에 묵서명(墨書銘)·선각명(線刻銘)을 한 것도 있다. 철화 백자는 기벽(器壁)이 얇고 구연(口緣)이 외반 혹은 외절하며 동체부에 초화문(草花文)이 그려져 있다. 청화 백자는 기벽이 두텁고 내만 또는 죽절상의 모래 비짐과 초화문 및 ‘수(壽)’ 명이 있다. 전체적으로 김산군 공해의 존속 시기인 12세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유물들로, 이는 문헌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특징]

교동 유적지 유물은 분묘나 일반 건물 터가 아닌 지방의 중심부에서 가장 중요한 관아와 객사 등의 대규모 건물 터와 그 주변부 생활 유적지에서 출토된 다종다양한 유물들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친 유물들이 대부분이며, 문헌상 김산군의 관가 건물이 가장 번성했던 15세기 후엽의 고급 분청자와 백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희소한 제기용의 특수 제품 혹은 관아 건물의 안녕을 비는 진단구(鎭壇具)나, 군수처럼 출세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관아 담장 혹은 마당에 몰래 묻은 태항아리 등도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교동 유적지 유물들은 김산군의 대표적인 생활 유물이면서 다종다양하다는 점과 특히 시기별로 망라된 자기류와 기와류가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명문과 문양, 기종, 기형, 제기 등의 특수 용품도 특별하지만 중앙 관요나 경주에서 생산되어 공급된 명문 자기들과 인근 지역인 영동 사부리 가마에서 생산되어 김산군에 공급된 제품들이 다수 확인됨으로써 조선 시대 자기의 생산과 유통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역할이 크다. 그리고 진단구에서 토기와 분청자 및 기와 뚜껑 세트가 한꺼번에 출토됨으로써 서로 다른 종류의 유물 편년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김산군 공해(公廨)의 변천 기록과 같은 시기 유물들의 비교 편년이 가능해짐으로써 향후 김천 지역의 역사 복원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0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경주장흥고(慶州長興庫)’·‘김산석존제(金山釋尊祭)’ 등의 명문 분청자들과 ->경주장흥고(慶州長興庫)’·‘김산석전제(金山釋奠祭)’ 등의 명문 분청자들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