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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강 묘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68
한자 金世綱墓碑
영어음역 Gim Segang Myobi
영어의미역 Gim Segang’s Tombston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주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1450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1516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
성격 묘비
관련 인물 김세강|이조영|이범직|권익상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에 조선 전기의 문신 김세강의 묘비.

[개설]

김해가 본관인 김세강(金世綱)은 1450년(세종 32) 청도 운계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회석(徊碩), 자는 도정(道貞), 호는 송계(松溪)이다. 천성이 도량이 넓고 곧아 어려서도 함부로 장난을 하지 않았고 의젓하고 점잖았다. 일찍이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업하여 김굉필(金宏弼)·조위(曺偉)·남효온(南孝溫) 등과 평생을 도의로써 사귀었다. 1480년(성종 11) 문과에 급제한 뒤 개성유수, 평안도관찰사, 병조판서를 지냈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겪는 동안 스승과 동료를 다 잃자 벼슬을 버리고 청도 진곡(津谷)에 숨어 살았다. 1516년(중종 11)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승과 벗의 원을 풀 길 없어 분통한 마음을 거문고와 술에 의지하여 지냈다. 세상을 떠날 때 “나라에 간흉이 아직 제거되지 못하였고, 스승과 벗들의 신원조차 못하였다. 죽어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죽은 뒤라도 후한 장례를 치를 생각은 하지 말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위치]

김세강 묘비 비문은 진사 이조영(李祚永)이 짓고, 글씨는 이범직(李範稷), 전(篆)은 권익상(權益相)이 썼다. 김세강의 묘는 처음 진곡에 썼다가 나중에 금릉군 구성면 남구암산으로 이장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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