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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27
영어음역 Gamateo
영어의미역 Site of Kiln
이칭/별칭 요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이주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산120 대성리 가마터Ⅰ지도보기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514 대성리 가마터 Ⅱ지도보기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산107 대성리 가마터 Ⅲ지도보기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임천리 566-3 임천리 가마터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개설]

가마터[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등을 구워내는 시설이다. 일반적으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시설물을 ‘가마’라고 통칭한다. 선사 시대에는 가마 시설이 없어 노천에 토기를 쌓아 놓고 그 주위에 나무를 쌓아 그릇을 구워냈는데, 대략 섭씨 500~600°의 낮은 온도에서 구웠으므로 산소 공급이 많아져 토기 속의 철분이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천요(露天窯)로는 고열을 낼 수가 없어, 석기(庠器, stoneware)[화로·병 등에 쓰이는 도자기의 하나]·도자기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통풍을 조절하여 고온을 낼 수 있는 지붕을 가진 움집과 같은 실요(室窯)와 언덕의 경사면에 길게 만들어진 터널형의 등요(登窯)[경사요, 오름가마]가 발달하게 되었다. 한사군이 설치된 서기 전후 무렵에 등요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등요는 언덕의 경사면에 길게 만들어진 터널 형태로, 다시 내부에 격벽을 여러 개 둔 연실(連室)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삼국 시대의 토기는 이러한 등요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등요에서 구운 토기들은 섭씨 1,1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 번조할 수 있는 가마에서 만들어진 회흑색의 경질 토기였다. 당시 사용되었던 등요는 지하에 굴을 판 뒤 그 벽을 따라 점토로 벽을 쌓았으며, 바닥도 점토를 깐 지하굴식의 등요였다. 이러한 지하실식의 등요가 통일 신라 시대를 거치면서 반지하·반지상 등의 등요로 발전되어 갔다.

고려 시대에 청자를 굽는 가마가 등장한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 있는 청자 가마를 조사해 보면, 10, 11세기의 가마 자리는 해안에서 좀 멀고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마의 규모도 작았다. 12, 13세기 무렵에 가마는 점차 해안에 가깝고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으로 옮겨지고 있다. 14세기에는 보다 해안에 가깝고 경사가 완만한 구릉으로 옮겨지며 가마의 규모는 커지고 있다.

조선 시대의 가마는 분청사기 가마와 백자 가마가 있다. 분청사기 가마인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의 가마 구조를 보면, 가마는 산기슭의 경사면에 여러 개를 나란히 축조하였다. 모두 지면을 약간 파서 기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그 좌우 위턱으로부터 진흙으로 벽과 천장을 둥글게 쌓아 올렸다. 모두 칸막이 가마로 칸마다 출입구가 오른쪽에 있고, 가마 바닥은 모래를 깔았다.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번천리에 있는 백자 가마의 구조를 살펴보자. 가마는 2개의 아궁이를 포함하여 총 17m의 길이이며, 너비는 1.7~2.2m에 이른다. 가마의 경사는 약 12°이며, 가마 바닥에 둥근 도지미를 깔았다. 아궁이는 가마 너비와 같은 너비로 넓고, 아래가 점차 좁아지는 변형 타원형으로 길이 3.4m, 너비 1.8m, 깊이 0.6m의 규모로 2개의 봉통은 형태와 크기가 동일하다. 봉통 입구는 2개의 돌과 진흙으로 50㎝ 너비의 아궁이문을 구축하였다. 이들 조선 시대 가마는 16세기 무렵의 가마로 추정되는데, 후기로 갈수록 가마의 규모가 커지며 계단식의 경사진 칸 가마로 발전되어 간다.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등요 외에도 가스 가마·기름 가마·전기 가마 등이 현대적인 구조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현황]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의하면 현재 발굴 조사를 한 결과 대성리 가마터[大聖里 窯址]는 고려 시대, 김천 임천리 가마터[林泉里 窯址]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리 가마터 Ⅰ이 고려 시대의 가마로 조사됨에 따라 대성리 가마터 Ⅱ, 대성리 가마터 Ⅲ도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천 지역에서 가마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일대와 구성면 임천리 일대이다. 현재 대성리 일대에서는 3군데, 임천리 일대는 1군데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조마면 장암리 점동 옹기점 가마터와 봉산면 상금리 사기점 가마터, 어모면 능치리 능점 가마터 등이 있다.

1. 대성리 가마터 Ⅰ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산120번지에 있는 김천 대성리 가마터 Ⅰ은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일대로 추정된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에서 이곳을 발굴하였다. 그 결과 고려 시대 토기 가마[土器窯] 4기, 토기 가마와 관련된 유구 5기, 폐기장 2개소가 조사되었다.

2. 대성리 가마터 Ⅱ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514번지 일원에 있는 김천 대성리 가마터 Ⅱ는 김천 대성리 가마터 Ⅰ에서 북동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소토(燒土), 토기편, 자기편 등이 산재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가마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3. 대성리 가마터 Ⅲ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산107번지에 있는 김천 대성리 가마터 Ⅲ는 김천 대성리 가마터 Ⅰ에서 북동쪽으로 5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현재 가마의 벽체, 폐기장 일부가 조사되었다.

4. 임천리 가마터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임천리 566-3번지 일원에 있는 김천 임천리 가마터는 구성면 임천리 사기점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좌측의 축대 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도자기 파편들이 다량으로 산재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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