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30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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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石基 |
이칭/별칭 | 기촌(耆村),세익스피어 연구 대가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창겸 |
출생 시기/일시 | 1922년 3월 6일 - 여석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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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4년 4월 - 여석기 김천고등보통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39년 4월 - 여석기 일본 마쓰에 고등학교 입학 |
몰년 시기/일시 | 2014년 6월 12일 - 여석기 사망 |
출생지 | 여석기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
학교|수학지 | 김천고등학교 - 경상북도 김천시 송설로 90[부곡동 777-1] |
성격 | 학자|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성주 |
대표 경력 | 고려대학교 교수|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문인·연극 평론가·영문학자.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기촌(耆村), 부인은 1946년에 결혼한 송주익이다.
[활동 사황]
여석기(呂石基)[1922~2014]는 1922년 3월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1928년 4월 김천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 입학, 1934년 4월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고등학교]를 입학하였다.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9년 4월 일본 마쓰에 고등학교 입학하였다. 1941년 안톤 체홉, 고든 크레이그의 『The art of the theatre』를 읽으며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1942년 4월~1943년 12월까지 동경제국대학 영문과에 재학하다가 1944년 징용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고국으로 귀향하여 미군정청 김천 지역 사령관 도일 소령의 통역 일을 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7월에 졸업하였으며, 졸업 논문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해 썼다. 1956년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여 1958년에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1979년 경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 10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예과 강사를 하다가, 1947년 대구사범대학[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훈국, 민사원조처(civil assistance corps)에서 통역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1953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고려대학교 교무처장, 고려대학교 미국문화연구소장, 고려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1987년 정년 퇴임하였다.
1954년 한국영어영문학회 발족에 참여하였고, 1959~1967년 『사상계』 편집위원을 맡았으며, 1969~1971년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을 지냈고, 1977년 6월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에 선임되었으며, 1982~1984년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흔히 ‘세익스피어 연구의 대가’라고 부른다.
한편 연극, 영화, 드라마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62년 드라마센터의 초대 연극아카데미원장을 맡아 유치진·신태민·이해랑 등과 함께 후진 극작가 양성과 연극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국극작워크숍’을 개설하여 10여 년간 진행을 통해 노경식·윤대성·오태석·이강백 등 한국 대표 극작가들을 배출하였다. 1966년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장, 1970~1980년 『연극평론』 발행인, 1975~1984년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위원장, 1982년 국제문화재단 이사, 1983년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1987~1991년 연극평론가협회장, 1988~1991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1992~1994년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84년부터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여석기는 한국 연극비평 분야의 선구자로서 1970년 연극비평 계간 전문지 『연극평론』을 만들어 사재를 바쳐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발행인을 맡아 연극평론계 발전을 이끌었다. 2002년에 평생 수집 정리한 희곡과 연극 관련 자료 2,000점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기증하여 후학들의 연구에 활용케 하였다. 2014년 6월 12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6월 1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에서 대한민국 연극인장으로 엄수되었다.
[저술]
주요 저서로는 『희극론』, 『20세기 문학론』, 『현대연극』, 『한국 연극의 현실』, 『동서연극의 비교연구』[1987], 『현대 영미희곡작품론 노트』[1987], 『에세이 셰익스피어 명작선』[1991], 『씨네마니아』[1996], 『햄릿과의 여행 리어와의 만남』[2001], 『나의 햄릿 강의』[2008], 『여석기 나의 삶 나의 학문 나의 연극』[2012] 등이 있다. 「현대연극의 조류」 등 연극 관련한 많은 평론과 논문이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처드 3세』, 『십이야』 등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여석기는 평론 부재의 연극 풍토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구미 현대극이 한국 신극에 미친 영향에 관한 학술 연구를 하였다. 젊은 연극인을 육성하고 영화의 발전에 힘을 쏟은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국민훈장 목련장, 1985년 동랑 연극상, 1987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6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여하였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그의 업적을 기려 ‘여석기 연극평론가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