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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특별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38
한자 金泉特別面
영어음역 Gimcheon Teukbyeolmyeon
영어의미역 Gimcheon Special My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1917년 10월 1일연표보기
폐지 1931년 4월 1일연표보기
관할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정의]

1917년부터 1931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별면.

[개설]

1917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김천을 특별면으로 지정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인 면장 대신에 일본인 면장을 두게 되었다. 김천의 일본인 사회는 지방 출신 인물이 면장이 되기를 바랐으나, 기대와 달리 지방과 관련이 없는 스즈오카 세이이치[鈴岡正一]이 취임하였다. 면장의 상담역으로는 모리모토 오토지로[森本音次郞], 기이 고레타카[城井惟隆], 황필주(黃苾周), 추응천(秋應天) 등이 임명되었다. 신임 면장은 취임 직후 한국인 5명, 일본인 10명으로 하여금 사업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여 면장의 자문에 응하도록 하였다.

[변천]

1918년 12월 야마가미 산라쿠[山上三樂]이 새로운 면장으로 취임하였으나, 이내 사임하고 1919년 11월 무라사키 사다노스케[紫崎定介]가 면장에 임명되었다. 1919년 지지부진하던 감천 호안 공사를 3만 원의 경비를 들여 4개년 계획으로 착수하였다. 1920년 면제 개정으로 면 상담역 제도가 없어지고, 18명으로 구성되는 면 협의회를 설치하였다. 1920년 11월 20일 제1회 김천면협의원 선거를 통해 한국인 5명, 일본인 5명이 당선되었다. 특별면의 요건으로는 상공업자 50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가구당 평균 면 경비 7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였다. 당시 경상북도의 특별면은 김천을 비롯하여 영일군 포항이 있었다.

김천특별면은 1928년 감천면 지좌동 전역을 편입해 행정 구역을 확장하였다. 1930년 12월 지방 제도 개정령이 공포됨에 따라 1931년 4월 1일자로 김천특별면이 김천읍으로 승격하였고, 경상북도에는 김천을 비롯하여 포항·경주·안동·상주 등이 함께 읍이 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김천읍은 김천시로 승격하였고, 이때 시·군이 분리되어 김천군금릉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0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삼본음차랑(森本音次郞), 성비유융(城非惟隆), 황필주(黃苾周), 추응천(秋應天) 등이 임명되었다 ->삼본음차랑(森本音次郞), 성정유륭(城井惟隆), 황필주(黃苾周), 추응천(秋應天) 등이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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