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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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경양서원(鏡陽書院)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여대로(呂大老)와 여응구(呂應龜)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 감호문집·송오문집 판목은 경양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104장의 『감호문집(鑑湖文集)』 책판과 50장의 『송오문집(松塢文集)』 책판을 말한다. 『감호문집』은 조선 후기 문신 여대로[1552~1619]의 시문집이다. 여대로의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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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강평(江平)의 ‘강(江)’자와 구곡(九曲)의 ‘곡(曲)’자를 따서 강곡(江曲)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조마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구곡·월곡(月谷)·강평이 통합되어 김천군 조마면 강곡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조마면 강곡동이 되었고, 1962년 강곡1동·강곡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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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계숙(啓叔), 호는 기재(耆齋). 할아버지는 김천도찰방을 역임한 강부(姜符)이고, 아버지는 남와(南窩) 강설(姜渫)이다. 강여호는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여대로(呂大老)이며, 장인은 강용사(姜用俟)이다. 강여호의 서자(庶子)인 강필중(姜必中)은 허통(許通)되어 1708년(숙종 34) 식년회시(式年會試)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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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중기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송오(松烏) 여응구(呂應龜)와 그의 아들 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 부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서원 건물 오른쪽에 사당이 있는데 철폐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옛날과 같이 두 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여응구는 157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론을 지냈으며 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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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거주하는 성산여씨 가문의 가례(家禮). 1990년 당시 건들바우박물관 학예실장 석대권이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와 광명리 성산여씨 종가 댁을 방문하여 이 집안의 가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후 1991년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김천민속지』에 「성산여씨가문의 가례」라는 글을 실었다. 당시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는 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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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숙(熙叔).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만호 권흠이다. 동생으로 권응기가 있다. 권응성(權應聖)[?~1592]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우가 극진하고 지용이 출중하였다. 도량이 넓고 장부의 기상이 있어 독서하되 손오병서를 읽을 때는 “장부로 태어나 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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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김산군 과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김천군 과곡면 금평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금평동으로, 1949년 금릉군 구성면 금평동으로 개칭되었다. 1971년 금곡(金谷)·광수(廣首)가 금평1동, 두곡(豆谷)·새터[일명 고숲]가 금평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이(里)로 바꾸어 금평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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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하고 여종도(呂從渡)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여씨는 중국 당나라 때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한 여어모(呂禦侮)를 원조(元組)로 하고 조선 전기 대광공(大匡公) 여양유를 시조로 한다. 여양유는 왜(倭)를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워 삼선대국(三宣大國)에 올랐고 2세(世) 여극회(呂克誨)가 조선 전기에 판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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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김천시내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가다가 구성면 송죽리송죽휴게소 직전에 조마면 방면으로 좌회전을 하면 금평리와 광명리가 나온다. 금평리 기를마을 앞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2㎞정도 직진하면 금평리 광수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마을 입구로부터 300m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로 왼편에 야귀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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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우(聖遇), 호는 감호(鑑湖). 아버지는 여응구(呂應龜)이다. 여대로(呂大老)[1552~1619]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문하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을 이루려는 뜻이 남달랐다. 아버지는 늘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을 빛낼 자식”이라고 격려하였다. 8세에 모친상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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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여대로의 창의비. 여대로(呂大老)는 성산여씨 여응구(呂應龜)의 아들로 1552년(명종 7)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감호(鑑湖)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고향에서 집안의 노복과 마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 곽재우(郭再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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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명세(鳴世), 호는 수봉(壽峰).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저징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이명(呂以鳴)[1650~1737]은 김천시 교동에 있던 양사당(養士堂) 창건을 주도하여 김천 지역의 유학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와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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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견재, 호는 이은(二隱)이다. 성산 여씨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석희이다. 여채룡(呂彩龍)은 1866년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금평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바르고 지기가 곧았으며, 여진룡(呂震龍)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혀 문장이 좋았다고 전한다. 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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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도, 호는 노일헌. 여종호(呂從護), 여응구(呂應龜), 여대로(呂大老)의 가계를 잇는 여사민의 아들이다. 아들로 여석홍을 두었다. 여학조(呂學祖)[1715~1836]는 천품이 총명하였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일찍이 조목수(趙沐洙)·유심춘(柳尋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여러 번 사림에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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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리를 감싸고 있는 감문산에 오르면 멀리 마을을 회오리쳐 흐르는 감천과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 감문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관학산과 유동산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곳이 지금으로부터 418년 전 동부리를 비롯한 개령 읍민 절반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령 동부리 일대는 수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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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일본이 오랜 기간 전국 시대를 통하여 전쟁 경험을 쌓고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여 일으킨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당쟁에만 몰두하여 군비가 전무한 상태였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서울까지 오는데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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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여, 호는 해재(海齋). 아버지는 이유(李遊)이다. 집안이 대를 이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사세 학행, 사세 유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유도 형 이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잠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 대에 학행으로 안음현 훈도에 제수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 이지남[자 성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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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4월 13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한양을 함락하기 위해 교통로를 따라 빠르게 진격하였다.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가 이끄는 우로의 왜군은 무계~성주~개령을 거쳐 4월 25일 교통의 요지인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김천역을 지키던 우방어사 조경(趙儆)과 조방장 양사준이 적을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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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지례현[지금의 김천시]에서 의병 연합군이 왜군을 섬멸한 전투.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들은 교통로를 따라 한양으로 직행하였으나 후방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공격을 가하자 1592년 5월 초 한양 함락 후 각 도를 분담하여 공격하는 전술을 택하였다. 이때 고바야가와 부대는 전라도를 맡아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처음 창원에서 남원으로 직행하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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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 말 지례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지리(上智里)·하지리(下智里)가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지좌리(智佐里)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부항면 지좌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가 되었다. 마을 앞으로 부항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지좌리는 부항면 소재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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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화순(和順). 증조할아버지는 최선문(崔善門)이고, 아버지는 최득종이다. 아들은 최경운·최기운, 손자는 최유형·최유선·최유림·최유수, 증손자는 최여망·최단망을 두었다. 아들 최경운과 최기운도 1630년(인조 8) 각각 33세와 28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의 대를 이어갔다. 이들은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지근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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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김천 지역의 충신을 기록한 자료로는 『품천지(品川誌)』,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등이 있다. 김천 지역의 충신을 유형별로 나누면 조선 개국에 항거하거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