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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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행정 구역. 개령면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甘文國)이 있던 곳으로 231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557년 감문주를 설치하여 기종을 군주(軍主)로 파견하였고, 687년 사벌주 밑에 개령군을 두고 그 밑에 금물현[어모현]·지품천현[지례현]·무산현[무풍현]·김산현을 두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상주목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 1416년(태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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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개령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북도 김천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아포읍], 14개 면[농소면·남면·개령면·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감문면·조마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6개 동[자산동·평화남산동·양금동·대신동·대곡동·지좌동] 중 개령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개령면사무소는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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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시민들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나 공공녹지. 공원은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하여 자연 경관의 보호와 주민의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을 위하여 마련한 사회 시설이다. 자연공원은 관리 주체에 따라 국립 공원·도립 공원·군립 공원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도시공원은 그 기능에 따라 근린공원·어린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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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개신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4세기 초 로마의 국교로 채택된 기독교가 이후로 점차 세속화되어 16세기에 이르러 종교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되었다. 이에 1517년 마틴 루터가 기독교의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고 뒤를 이어 츠빙글리와 요한 캘빈이 일대 변혁을 일으켜 소위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창설하였는데 이를 기존의 기독교인 천주교와 구별하여 개신교로 불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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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광동에 소재한 누정. 김천 지역 누정 중 현존하는 것은 25개이다. 이 가운데 문중에서 건립한 정자가 10개로 낙원정(樂園亭)은 죽산전씨 문중 정자이다. 낙원정은 김천시 대광동 묘광마을 입구 연화지 가장자리에 있다. 대광동의 묘광마을은 예부터 죽산전씨 집성촌으로서 설립자 전재원(全在源)이 사비를 들여 건립한 후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연화지의 절경을 감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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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남과 하남 두 마을 경계인 남산에서 이름을 따서 남산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천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20년 상남·하남·길계가 통합되어 김천군 아천면 남산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어모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어모면 남산동이 되었다. 1971년 남산1동·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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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집. 누정(樓亭)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써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 환경에 부합되는 가장 자연 친화적이며 한국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자연 경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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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광동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농어촌 지역에 공업 및 서비스 산업을 유치하여 농어촌 소득원의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농어촌 소득을 증대하고 농어촌 소득 구조를 고도화하여 농어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추진된 공업 단지”이다[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 제1조]. 농어촌 지역의 인구 10만 이하의 시와 군 지역을 대상으로 33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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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대보(大洑)의 ‘대’자와 묘광(妙光)의 ‘광’자를 따서 대광동이라 하였다. 1914년에 개령군 서면 대보와 묘광이 통합되어 김천군 개령면 대광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개령면 대광동으로 개칭하였고 1983년 김천시 대광동으로 개칭하였다. 1983년 응명동과 통합되어 신설된 행정동인 대응동 관할이 되었다가,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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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삼락동·문당동·대광동·응명동·신음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14년 상리·중리·하리·금평이 삼락동으로 개편되었고, 교리·향동이 교동으로, 문산리·당동·배천리가 문당동으로, 금음리·금신리·부거리가 신음동으로, 매목·독정리·괴동이 응명동으로, 대보리·묘광리가 대광동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 삼락동·교동·문당동이 행정동인 금산동으로 통합되었고, 응명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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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신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신자들이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의 산악 지대로 피난하면서 김천 지역으로 천주교가 전해지게 되었다. 김천시 증산면과 대항면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신자촌이 형성되고 신자가 급증하게 되자 1896년 칠곡 왜관 가실본당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주임신부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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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과 혁신도시를 연결하는 터널. 경상북도 혁신도시[율곡동]가 김천시로 유치된 후 12개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하고 대규모 아파트와 상가 건설로 인구가 급증해 기존 구시가지와 혁신도시를 연결하는 중심도로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혁신도시와 신음동을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되었는데 응봉산을 통과하는 곳에 대신터널을 개통하였다. 터널이 소재한 응봉산은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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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김천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일컬어져 왔다. ‘삼산이수’란 세 개의 산과 두 개의 물이라는 의미이니, 이는 곧 산과 물로 대표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유한 것이다. 김천을 대표하는 삼산(三山)은 황악산·금오산·대덕산이며, 이수(二水)는 감천과 직지천을 가리킨다. 삼산이수는 김천 지역이 금릉(金陵)으로 불렸던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금릉은 오랫동안 김천 지역의 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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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 김천 지역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은 180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신자들이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의 산악 지대로 피난하면서 김천시 증산면과 대항면 일대에 신앙촌이 형성되었다. 1896년 칠곡 왜관 가실본당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주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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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국토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1977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고 이후 전국적으로 많은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토지이용규제기본법」에 따르면 아파트는 공동 주택 중 주택으로 쓰이는 층수가 5개 층 이상, 20세대 이상인 주택을 말한다. 아파트와 유사한 주거 형태인 연립 주택은 1개동의 연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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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이 들어앉은 곳이 매의 목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매목이라 하였다가 응명(鷹鳴)으로 고치었다. 조선 말 김산군 천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매목·느티골[일명 괴동(槐洞)]·독정(獨井)·아홉사리 등이 통합되어 김천군 아천면 응명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어모면 응명동이 되었다. 1983년 김천시 응명동이 되면서 대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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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장로회 또는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 기간 중에 존 녹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칼뱅주의 성격의 개신교 종파이다. 존 녹스는 칼뱅의 제자로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뱅의 종교 개혁 사상을 전파하였다.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적 전통을 따른다는 점에서 다른 개혁 교회들과 같았으나 목사와 장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대의 정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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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저수지는 유수(流水)를 저장하여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 시설로서 하천에서 충분한 용수를 확보할 수 없을 때의 중요한 지표수 용수원(用水源)이다. 시설비가 비싸고 수질이 떨어지는 결점은 있으나,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고 수온도 흐르는 물보다는 높은 경우가 많아 농업용수로서 유리하다. 또한 관광 용지로도 개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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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상북도 김천시의 역사. 1. 미군정 시대 8·15 광복 이후 김천은 정부 수립과 6·25 전쟁에서 주요한 위치에 선 지역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면서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이하였다. 김천에서도 해방의 기쁨을 누리면서 새로운 국가 건설에 노력을 기울였다. 8·15 직후 김천에서는 지역의 주요 인물과 세력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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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감천을 빗대어 흙탕물이 흐르는 시내란 뜻에서 황계(黃溪)라 하였다. 달리 비옥한 황토가 많은 큰 마을이므로 황경(黃京), 마을에서 볼 때 감천이 가로로 누워 흐른다 하여 횡경(橫京)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송(五松)·황경을 통합하여 황계동이라 하고, 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