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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자랑 불천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B020302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시대 조선/조선,현대/현대
집필자 최경호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정양공]

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은 조선 성종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1429~1489] 선생을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이숙기 선생은 연성부원군 이말정의 아들로, 구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용맹하며 큰 뜻을 품었던 이숙기 선생은 1453년(단종 1) 25세의 나이로 무과에 일등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인 28세 때는 중시에 급제한 후 가전훈도로서 왕이 사열할 때 왕명을 전달하였으며, 이후 평양과 영변의 판관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이숙기 선생은 비장이 되어 남이 장군과 함께 난의 평정에 나섰다. 그리하여 북청 공방전에서 승리하고 마흘고개에서 이시애를 생포하여 목을 벤 공으로 절충장군으로 특진되었고, 후에 오위도총관이 되어 적개공신 일등훈에 오르기도 했다. 이어서 이조참판에 오르면서 연안군에 피봉되고, 같은 해 겨울에는 명나라의 원병을 요청받고 나아가 건주위에서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워 자헌대부가 되었다. 뒤에 주요 내외직을 두루 거치며 형조판서와 호조판서에 올랐다.

[집안의 자랑 불천위]

2011년 현재 이숙기 선생의 위패는 구성면 원터마을 연안이씨 종가 뒤편에 자리한 불천위 사당인 ‘관락사(寬樂祠)’에 모셔져 있다.

원터마을이숙기 선생으로부터 시작해 5백여 년간 그 후손들이 살아오고 있고, 그 중심에는 연안이씨의 종가가 있는 셈이다.

불천위는 글자 그대로 봉사하는 위패를 옮기지 않고 계속해서 제사를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양공 이숙기 선생은 공신 책록을 통해 나라에서 부조의 명을 내린 국불천위이다.

주지하다시피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그 집안의 영광이자 유교적 소양이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특히 국불천위는 향불천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격이 높음을 인정받는다.

불천위 기일은 이숙기 선생이 정양공 시호를 받은 후부터 매년 음력 11월 4일에 지내고 있다.

또한 이숙기 선생의 부인인 남양홍씨, 즉 비위의 기일은 음력 4월 10일이다.

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에서는 이 불천위와 비위를 모시는 제사가 곧 마을의 행사와 다를 바가 없다.

원터마을연안이씨들 역시 그들이 정양공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는 집안의 자랑을 넘어서 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의 자랑인 셈이다.

[정보제공]

  • •  이순영(남, 1926년생,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주민)
  • •  이응규(남, 1943년생, 구성면 상좌원리 주민)
  • •  이철응(남, 1945년생,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주민, 연안이씨 종손)
  • •  이영화(남, 1949년생, 구성면 상원리 출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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