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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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川里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정영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1년 - 금천리 고인돌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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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12월 24일~2003년 5월 26일 - 금천리 고인돌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소재지 | 금천리 고인돌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신기마을 |
출토 유물 소장처 | 밀성고등학교 향토관 - 경상남도 밀양시 석정로 127[내이동 602-7] |
성격 | 고인돌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개설]
금천리 고인돌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신기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는 30여 곳에 가까운 고인돌 혹은 고인돌 떼 유적이 있다.
[위치]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는 엄남천과 단장천이 밀양강 본류와 만나는 유역의 북동쪽에 있다. 신기마을(新基마을)은 금천리의 북동쪽 화지산 자락 구릉에 있으며, 마을 앞으로 단양천과 산내천이 합류하는 동천이 흐르고, 동천 좌우로 거문고들과 다원들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밀양 금천리 유적은 평야 지역의 농지에 있으며, 고인돌은 주거 유적과 인접하여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70년대 농지 구획 정리 사업이 시행되면서 지하에서 100여 기의 묘지 및 매장물이 출토되었으나 발굴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도굴꾼들에 의하여 피해를 입었다. 1981년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어 2001년 12월 24일부터 2003년 5월 26일까지 경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3차에 걸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주거 및 고분 등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형태]
금천리 유적지에서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고분 등의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역시 여러 기가 발굴되었다. 그중 1기는 원래 위치인 개인 소유 과수원에 그대로 남겨져 있는데, 고인돌의 덮개돌 상부에는 알구멍[星穴, cup mark]이 남아 있다.
[출토 유물]
토기 등 많은 유물들이 도굴로 인하여 유실되었으나, 고인돌 떼에서 출토된 간화살촉 2점은 밀성고등학교 향토관에 진열되어 있다.
[현황]
과수원에 있는 1기 외의 대부분의 고인돌 덮개돌들은 농지 구획 정리 사업 당시 마을 입구로 옮겨지면서 원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농지 내에 위치한 돌들이 발굴 과정에서 고인돌의 기둥돌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금천리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종교와 계급 구조 등의 사회상을 보여 준다. 인근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임고리, 가인리 및 하천 너머에 있는 밀양시 활성동 등에 있는 고인돌과의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