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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병국(姜秉國)[1915~1984]은 1915년 10월 11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1930년 1월 부여에서 강일(姜日)[강성구(姜星求)]·강성모(姜聖模) 등과 함께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학생들에게 함께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보통학교 중퇴 후에는 문맹 퇴치 운동에 나섰고,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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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병욱(姜秉郁)[1914~1946]은 1914년 11월 19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진주 강씨 집성촌인 장하리 장정마을에서 강석기(姜錫箕)가 설립한 광일의숙 교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강영헌(姜暎憲) 또는 강갑길(姜甲吉)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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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병환(姜秉煥)[?~?]은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장하리 장정마을은 진주 강씨 집성촌이자 대종교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독립운동가인 강석기(姜錫箕)의 고향이다.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던 강석기는 간도 주재 일본영사관에 체포되어 고향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강석기는 1929년 장정마을에 광일의숙을 설립하였고, 1930년대 광일의숙은 장정야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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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석기(姜錫箕)[1862~1931]의 다른 이름은 강우(姜虞), 강호석(姜湖石)이다. 아버지는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장정마을에서 세거한 진주 강씨 강신발이며, 아들은 강진구(姜鎭求)·강철구(姜鐵求)·강용구(姜鎔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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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성모(姜聖模)[1915~1940]는 1915년 11월 19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부여에서 강일(姜日)[강성구(姜星求)]·강병국(姜秉國) 등과 함께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학생들에게 함께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후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문맹 퇴치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33년 4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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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영직(姜永直)[1914~1979]은 1914년 8월 10일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서 태어났다. 1933년 8월 중국 장쑤성[江蘇省]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의열단과 중국 국민당 정부 간 한중 연합의 결실로 난징[南京]에 설립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였다. 당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운영은 교장 김원봉(金元鳳)을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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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용구(姜鎔求)[1896~197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버지는 대종교 원로이자 독립운동가인 강석기(姜錫箕)이고, 형은 강진구(姜鎭求)·강철구(姜鐵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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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일(姜日)[1911~1974]은 1911년 3월 25일 부여군 장암면에서 태어났다. 1926년 고향에서 일본 학교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지만 미성년자라 풀려나기도 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1930년 2월 노명우(盧明愚)·유복윤(柳福允) 등과 함께 항일 격문을 제작하여 부여농업보습학교에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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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일구(姜日求)[1910~1961]는 1910년 9월 23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부여공립보통학교[현 부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만주와 일본 등지를 다니다가 1931년 8월 귀향한 뒤에는 최재봉(崔在鳳)이 경영하는 조선일보 부여지국에서 일하며 장정야학당 교사를 겸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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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진구(姜鎭求)[1884~1957]의 자는 문옥(文玉)이며, 호는 소석(小石)이다. 아버지는 대종교 원로이자 독립운동가인 강석기(姜錫箕)이다. 동생은 강철구(姜鐵求)와 강용구(姜鎔求)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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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철구(姜鐵求)[1894~1943]는 1894년 2월 8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하다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17년 대종교 교도로서 만주로 건너가 북간도 연길현 동불가 천영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1월부터는 북로군정서 총재인 서일의 비서가 되었다. 1920년 4월 재무국장 윤정현의 명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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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있는 순직한 경찰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충혼탑. 1995년 10월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일대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다. 무장공비를 생포하기 위하여 군경합동부대의 대간첩작전이 전개되었다. 체포 작전에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와 공수특전단 203 특공여단 소속 병력, 부여경찰서 경찰 병력 등이 참가하였다. 간첩들과 총격전이 발생하였고, 총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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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고상준(高相俊)[1900~1977]은 1900년 12월 17일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당시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거주하던 고상준은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추병갑(秋炳甲)·서삼종(徐三鍾)·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 등과 함께 강경읍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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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에서 활동한 계몽 청년 단체. 구룡청년공지회(九龍靑年共志會)는 1923년 11월 11일 김일환(金日煥), 이병직(李秉直), 이곤(李坤) 등이 발기하여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이다. 구룡청년공지회는 부여군 구룡면 지역의 계몽과 교육 운동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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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권운택[1854~1910]은 1854년 부여군 몽도면 동구두[현 부여읍 자왕리 동구머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이관도(李寬道)의 의진에 합류하여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관도 의진은 충남 서산군 출신 맹달섭(孟達燮)의 의진과 합진하여 청양군·대흥군(大興郡)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일본 경찰과도 교전하였다. 19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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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규암청년회(窺岩靑年會)는 1922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서 설립되어 대중을 상대로 강연회와 웅변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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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이후부터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시기까지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역사. 서세동점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치던 대원군 집권기는 1873년 고종의 친정으로 막을 내렸다. 고종이 집권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근대화 팽창 정책을 펴던 일본의 포함 외교가 맞물리면서 1876년 2월 조선과 일본은 조일수호조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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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을 계기로 부여 지역의 홍산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항쟁.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하였고,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다. 근대 의병운동(近代 義兵運動)은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저항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부여 지역 인근에서도 1906년 홍주의병이 일어났다. 이용규와 홍순대 등 부여 출신 인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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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여 부여 지역 천도교인들이 의하여 전개된 모금 운동. 기도미 납부 운동(祈禱米 納付 運動)은 부여 지역 천도교도들이 3·1 운동 이후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여 자발적으로 기도미를 납부하던 운동이다. 기도미는 교인의 집에서 기도할 때마다 5홉가량을 청수와 같이 올려 기도한 후 모았다가 지역 교구에 납부하는 것을 말하는데, 기도미는 천도교 재정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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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빈(金德彬)[1883~?]은 1883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북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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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희(金道熙)[1867~1924]는 1867년 8월 23일에 부여군 임천면 내동리[현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다가, 서울로 상경하여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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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목현(金穆鉉)[1885~?]은 1885년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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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소범(金小凡)[1890~?]은 1890년 4월 10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삼용리에서 태어났다. 1915년 만주로 건너가 1921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환인현 남구 마권자에서 열린 남만한족통일회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하여 남만주 일대 독립군 단체가 통합하여 조직하였다. 대한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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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윤회(金潤會)[1913~1950]는 1913년 3월 1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송간리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 공주영명학교를 졸업하고, 4월 서울 법정학교에 입학하였다. 1933년 8월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한편, 1933년 9월 국제공산당 관련 활동을 하였다.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4년 9월부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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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록(金在錄)[1913~1971]은 1913년 1월 28일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태어났다. 1931년 1월 15일 유기섭(柳基燮)·노명우(盧命愚)·이호철(李戶喆) 등은 부여군 홍산면에서 금강문인회를 조직하여 야학을 개설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다가 10월에 공산주의연구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33년 3월에는 공산주의연구협의회를 발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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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갑(金鐘甲)[1894~1933]은 1894년 5월 8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김종갑은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추병갑(秋炳甲)·서삼종(徐三鍾)·고상준(高相俊)·추성배(秋聖培)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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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학(金鍾學)[1889~1945]은 1889년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가덕리에서 태어났다. 1912년 천도교에 입교하였으며, 1917년 천도교 부여 원홍산 전교사로 임명되었고, 1917년 4월 천도교 부여교구장이 되었다. 3·1 운동 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3월 31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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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태호(金泰昊)[1880~1919]는 1880년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가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김태호는 이백순(李伯純)과 함께 천도교 논산교구실에서 민영순(閔泳淳)으로부터 「독립선언서」 40매를 수령하여 밤 9시경 부여에 도착하였다. 김태호는 천도교 부여교구실에서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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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제(金亨濟)[1888~1945]는 1888년 1월 13일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북로군정서에서 파견된 예산 출신 김영진(金暎鎭)을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마을 출신인 김백순(金伯順)·이창호(李昌鎬), 노화리 출신 노재철(盧載喆) 등과 함께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에 입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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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1930년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농촌 계몽을 목적으로 설립 운영된 비정규 학교.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노동야학(勞動夜學)은 교육을 통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의 인격적 주체로서의 성장을 돕고 문맹 퇴치를 통한 계급적 각성과 민족정신을 일깨워 저항 민중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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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명우(盧命愚)[1915~1972]는 1915년 5월 6일 태어났다. 본적은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이다. 1931년 1월 15일 홍산면에서 유기섭(柳基燮)·장창선(張昌善)·오기영(吳祺泳)·이원인(李原人) 등 19명과 함께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를 조직하였다. 1931년 봄 이호철(李戶喆)·장창선(張昌善)·유기섭·오기영 등과 함께 농민 조합 조직에 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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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명우(盧明愚)[1897~1936]는 1897년 8월 5일 출생했고 본적은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이다. 공주 영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전단 1,000여 매를 인쇄하였고, 유준석(柳俊錫)과 함께 각자 전단 100매씩을 지니고 있다가 4월 1일 공주시장에서 살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8월 29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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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재철(盧載喆)[1889~1961]은 1889년 11월 21일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노화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북로군정서에서 파견된 예산 출신 김영진(金暎鎭)을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마을 출신인 김백순(金伯順)·김형제(金亨濟), 합송리 출신 이창호(李昌鎬)와 함께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에 입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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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진행한 운동. 1930년대 부여 지역의 농민조합 결성은 1920년대의 세계 정세 변화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시작은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으로 쌀값이 폭락하면서 조선 농민의 경제는 파탄 국면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지속된 일제의 수탈과 조선인 농민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 그리고 조선공산당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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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부여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물. 2022년 현재 충청남도 부여 출신 독립운동가 또는 부여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68명이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을 받았다. 훈격별로는 대한민국장 1명, 독립장 4명, 애국장 17명, 애족장 35명, 건국 포장 2명, 대통령 표창 9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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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동학 농민 운동은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에서 비롯되었다. 전라도는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여서 국가 재정도 전라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어 농민들은 항상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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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류인성(柳寅聖)[1917~1950]은 1917년 8월 5일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서 태어났다. 부여에서 사회주의 농민조합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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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경섭(文瓊燮)[1883~1941]은 1883년 10월 7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북고리에서 태어났다. 문경섭과 같은 마을 출신인 강철구(姜鐵求)가 고향인 부여에 내려와 1921년 음력 1월경에 박길화(朴吉和)·문장섭(文章燮)·김정제(金廷濟) 등의 동지들과 함께 부여의 부호 박창규(朴昌奎), 박남규(朴南奎)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고, 대한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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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장섭(文章燮)[1896~1967]은 1896년 5월 6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북고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으로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자, 북간도에 있는 독립군 단체 대한독립군정서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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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재동(文在東)[1868~?]은 1886년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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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길화(朴吉和)[1872~1952]는 1872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1912년 용당리에 삼학서원(三學書院)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사상 교육에 전념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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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남규(朴南圭)[1894~1932]는 1894년 10월 17일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동방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1월 동방리에서 같은 고향 출신인 친척 박길화(朴吉和)의 소개로 장암면 장하리 출신 대종교 교인 강철구(姜鐵求)를 만났다. 강철구는 1920년 4월 북로군정서 재무국장 윤정현(尹庭鉉)의 명령을 받고 국내에 파견되어 군자금을 모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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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성요(朴性堯)[1893~1932]는 1893년 3월 15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부여군에는 1919년 3월 2일 천도교 조직을 통하여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박성요는 김종석(金鍾錫)을 통하여 전달받은 「독립선언서」 5매를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인근의 도로에 배포하였고, 나머지는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 살고 있던 박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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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희(朴寧熙)[1896~?]는 1896년 12월 28일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휘문의숙 재학 중이던 1915년 이시영(李始榮)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여 수학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신흥무관학교의 교관 및 학도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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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화(朴容和)[1881~1953]는 1881년 12월 28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문재동(文載東)·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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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정문(朴正文)[1878~?]은 1878년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서 태어났다. 잡화상을 운영하던 박정문은 1908년 5월 8일 부여에서 박일복(朴一福)의 의진에 가담하여 부여군과 정산군[현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6월 21일 박정문은 동료 의병 16명과 함께 부여군 구룡리[현 청양군 장평면 구룡리]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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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정자. 백화정(百花亭)은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기리기 위하여 1926년 건립된 정자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부소산에 있다. 1929년 당시 부여군수였던 홍한표(洪漢杓)의 발의로 부풍시사(扶風詩社) 시우회가 건립하였다. ‘백화정’이라는 이름은 소동파(蘇東坡)의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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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부여군에 무장간첩이 침투한 사건. 부여 간첩 사건은 1995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부여군에 무장간첩 2명이 침투하여 긴급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사건이다. ‘부여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라고도 한다. 부여 간첩 사건으로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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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저포조합의 본점. 부여 구 홍산저포조합 본점은 1920년대에 건립된 저포조합(紵布組合)의 본점이다. 당시 홍산은 한산[충청남도 서천군]과 더불어 저포칠처(紵布七處) 혹은 저산팔읍(苧山八邑)이라고 불리는 저포(紵布)[모시] 생산지이자 집산지였다. 홍산 5일장에서는 장날인 2일과 7일에 3,000필이 넘는 많은 양의 저포가 거래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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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보부상 조직의 역사와 문화 전통. 보부상(褓負商)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통틀어 지칭한다. 전통 사회에서 보통 5일마다 열리던 사설 시장인 장시(場市)를 중심으로 지게나 봇짐으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며 활동하였던 전문 행상인들이나 이들이 속한 단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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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신도 건립 계획. 1915년 조선총독부는 「포교규칙」과 「신사사원규칙(神社寺院規則)」을 공포하였다. 「신사사원규칙」은 모든 신사의 창립과 존폐에 총독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기존 신사들도 총독의 인가를 받도록 하여 신사에 관·공립적 성격을 부여한 정책이다. 「신사사원규칙」은 「포교규칙」과 같은 날 공포되었는데,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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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던 부여 일대 고적 보존 및 조사 활동 기관. 일제 강점기 일제는 일선동조론에 바탕을 둔 일본과 조선의 동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동화 정책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경주, 부여 등 고도(古都)에 대한 고적 조사 및 고적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특히 부여 지역의 경우 고적 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백제 사비기와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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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지역에서 사회주의 계열 혁신 청년들이 검거된 사건.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扶餘共産主義者協議會事件)은 1933년 9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사회주의 세력 청년들이 대거 검거된 사건이다.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의 발단이 된 공산주의자협의회는 사유 재산 제도 부정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표로 조직된 비합법적 비밀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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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있던 신간회 지회. 신간회는 1927년 좌익 세력과 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한 항일 단체이다. 신간회는 조선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통한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하였으며, 부여신간지회는 특히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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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단군왕검의 초상화. 가로 34㎝, 세로 53㎝의 중국산 인조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린 단군왕검의 전신 초상화이다. 대종교 지도자이자 항일 운동가였던 강우(姜虞)[1862~1932]가 1920년대 황해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한다. 이후 강우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장정마을에 건립한 천진전에 봉안되었다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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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있던 청년 단체. 부여청년회(扶餘靑年會)는 부여 지역의 노동자와 농민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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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 만세 운동. 부여 지역에서 3·1 운동은 초기 단계에서는 「독립선언서」나 유인물을 배포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만세 운동이 점차 확산하면서 폭력 시위 양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부여의 3·1 운동은 천도교구를 통하여 1919년 3월 2일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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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충청남도 부여군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창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신향촌 운동이라고 하며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을 포함하여 범국민적·범국가적으로 추진된 새마을 운동은 농촌 개발 사업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공장, 도시, 직장 등으로 확대되어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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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삼종(徐三鍾)[1896~1972]은 1896년 12월 12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서삼종은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김종갑(金鐘甲)·추병갑(秋炳甲)·고상준(高相俊)·추성배(秋聖培)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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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병석(孫秉錫)[1904~1932]은 1904년 5월 6일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으며, 손대관(孫大寬)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을 기하여 조선학생과학연구회와 중앙고등보통학교, 중동학교의 일부 학생 등이 인산 행렬에 격문을 살포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다. 당시 현장에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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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송순묵(宋淳默)[1861~1934]은 1861년 10월 12일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3월 14일 예산(禮山)에서 봉기한 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흩어졌던 홍주의진이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재봉기할 때 송순묵은 의진에 가담하여 좌군관에 임명되었다. 민종식(閔宗植)은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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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수리조합 설치에 반대하여 일어난 농민 저항운동. 수리조합반대운동(水利組合反對運動)은 일제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과 충화면에 수리조합을 설치하려 하자 충화면의 복금리와 만지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저항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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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신봉만(申鳳萬)[?~?]은 부여군 천을면 규암리[현 규암면 규암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박일복 의진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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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전개된 실력 양성 운동. 부여 지역의 애국 계몽 운동은 교육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총독부는 1911년 「조선교육령」을 반포하고 보통학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후 부여군 내에 보통학교 12개를 설립하였으나 부여군 지역의 모든 아동이 학교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는 없었다. 문맹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차별도 심하였다. 빈농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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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재흥(梁在興)[1884~1959]은 1884년 5월 2일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송기면(宋箕勉)이 주도하여 일으킨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9일 오후 1시경 송기면의 주도로 신장리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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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당시 부여군 세도면에서 창영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엄창섭은 군산 영명학교 학생인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칠 것을 권유받았고,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추병갑(秋炳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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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기섭(柳基燮)[1905~1936]은 1905년 1월 2일 부여군 세도면 중정리[현 부여읍 중정리]에서 아버지 유병위(柳秉蔚)와 어머니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조선일보 부여지국 기자를 지냈다. 1926년 부여청년회에 가입하였고, 11월에 열린 임시총회에서 재무부 위원에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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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창열(劉昌烈)[1897~1980]은 1897년 12월 20일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10월 추재도(秋載道)의 권유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충남지부 특파원이 되어 청양군 내 자산가 등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음력 11월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 집에서 추재도와 회합하였다. 추재도는 1919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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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부여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1945년 8월과 9월 한반도에는 남과 북에 체제를 달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해방과 함께 이루어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이 남북 갈등과 좌우 대립을 거쳐 분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남과 북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동아시아에서 가속화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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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건호(李建鎬)[1885~1951]는 1885년 6월 5일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6월 전협(全協)으로부터 대동단 결성 취지를 듣고 찬동하여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동단은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목표로 조직되었는데, 의친왕 이강을 상하이로 망명시키려 하였다. 충청도 지역에는 연기, 공주, 유성에 군감을 두었다. 이건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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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추모비가 있는 개항기 의병. 이규철(李圭喆)[1865~1908]은 1865년 1월 22일에 태어났다. 본적은 논산시 은진면 양암리이다. 부여 유림들이 대거 참여한 홍주의병 외에도 이규철, 신봉만, 이성택, 이덕현, 권운택, 한기안, 한사용, 한성수, 한학삼, 이성범, 김광옥, 정관신, 이박원, 김판돈, 박성근, 이성우 등이 의병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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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정미칠조약이 체결된 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맞서 싸웠다. 1907년 8월부터는 강제 해산된 군인들이 의진에 직접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참여 계층도 유림, 농민, 포수, 해산 군인뿐만 아니라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까지도 대거 참여하여 국민 전쟁의 양상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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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문용(李文庸)[1891~1962]은 1891년 9월 8일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300여 석의 소작료를 거두어들이던 가족 소유의 토지 외에도 35간의 창고와 8간의 정미소를 매각한 막대한 금액을 주비단(籌備團)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헌납하였다. 1920년 6월 상해임시정부 지원을 목적으로 결성된 주비단은 군정서총사령관(軍政署總司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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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이상구(李相龜)[1859~1927]는 1859년(철종 10) 3월 16일 공주[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홍주의진에 가담하여 좌익장을 맡았다. 홍주의진은 청양과 홍주[현 충청남도 홍성군]를 중심으로 예산·부여·보령 등지의 항일 의병 세력이 민종식(閔宗植) 휘하에 대거 결집하여 부대를 형성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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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완식(李完植)[1867~1943]은 1867년 9월 3일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반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중(李華仲), 이국보(李菊甫)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3·1 운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1919년 11월 서울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 전국을 돌며 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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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이용규(李容珪)[1859~1924]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이다. 자는 성식(聖式), 호는 춘당(春塘)이다. 이은직(李殷稙)의 큰아들이다. 이용규의 매부는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이며, 매제는 조병두(趙炳斗)이다. 이남규(李南珪)는 이용규의 족형(族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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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철(李容轍)[1891~1961]은 1891년 1월 25일 부여군 임천면 탑산리에서 태어났다. 1912년 고종의 밀명으로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 가담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는 국권 회복을 위한 활동과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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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주호(李周鎬)[?~1921]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오번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간도(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광복단(光復團)의 국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단의 국내 활동은 1920년 배일사상을 갖고 있던 김국경(金國景)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김국경은 1920년 광복단 단장인 박성빈(朴聖彬)의 지시로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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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지역에서 국채 보상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차관을 공여하였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고 국권을 지키려는 국채 보상 운동이 1907년 대구에서부터 전개되었다. 이후 전국 각지에 국채보상기성회, 단연동맹회, 국채보상혈맹회 등이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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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창호(李昌鎬)[1883~1927]는 1883년 12월 26일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부여에서 3·1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으며, 1920년 북로군정서에서 파견된 예산 출신 김영진(金暎鎭)을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마을 출신인 김백순(金伯順)·김형제(金亨濟), 노화리 출신 노재철(盧載喆)과 함께 대한건국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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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이한구(李漢九)[1870~1935]는 1870년 10월 10일 부여군 임천면 발산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3월 14일 예산(禮山)에서 봉기한 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흩어졌던 홍주의진이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재봉기하자 이한구는 5월 17일 의진에 가담하여 유격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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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호철(李戶喆)[1901~1971]은 1901년 10월 29일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시위에 가담하였다. 1923년 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재학 중일 때에도 재일 동포를 규합하여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인식시키고 민족정신 함양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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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희춘(李喜春)[1926~2008]은 1926년 10월 13일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1월 15일 국내 항일 독립운동 조직인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여 김종구(金鍾九)·최헌길(崔憲吉)·조동훈(趙東勳) 등 여러 명의 동지들을 만주로 밀파하는 등의 국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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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때까지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역사.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일본에 의하여 강제 병합되면서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는 헌병 경찰이 행정과 경찰 업무를 겸임하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 민족 분열 정책을 썼던 1920년대 문화 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부터 1945년 일제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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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부여고적보존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유적 조사 사업. 일제 강점기 유적 조사(日帝 强占期 遺蹟 調査)는 1929년 2월에 만들어진 부여고적보존회(扶餘古蹟保存會)를 중심으로 부여 지역에서 진행된 유적 조사 사업을 의미한다. 일제는 일본의 아스카[飛鳥] 문화가 백제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하여 일찍부터 부여에 존재하는 무수한 백제의 유물, 유적에 깊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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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병직(林炳稷)[1893~1976]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영동, 평택, 홍성 등지에서 군수를 지낸 임연상(林淵相)이며 어머니는 대구 서씨이다.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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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래(林宗來)[1875~1959]는 1875년 11월 26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에서 태어났다. 1928년 2월 부여군 임천면과 충화면에서 수리조합을 시행하려 하자, 임종래는 충화면 복금리와 만지리에서 김목현(金穆鉉) 등과 함께 수리조합반대운동을 주도하였다. 1928년 2월 10일 지주와 거주민들을 회합하여, 임천면장에게 수리조합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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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부여 지역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6일 임천면에서 시작되었다. 임천면의 천도교인들은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배포하는 활동을 전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운동을 부여 지역에서도 확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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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재경 유학생 단체. 재경유학생강연단(在京留學生講演團)은 1920년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 근대 지식과 사상을 보급하며 민중 계몽을 위한 강연 활동을 벌인 재경 유학생으로 구성된 청년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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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정용운(鄭龍云)[1891~?]은 1891년 부여군 외산면 구신리[현 문신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오양선(吳良善)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부여와 보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정용운은 동지들과 함께 1908년 7월 25일부터 8월 25일까지 보령순사주재소 및 우편소를 공격하였고, 교전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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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판동(鄭判同)[1894~1925]은 1894년 10월 3일 충청남도 서산시 남면 몽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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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조병두(趙炳斗)[1886~1906]는 1886년 3월 1일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3월에 봉기한 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였던 홍주의진이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재봉기할 때 논과 밭을 매각하여 군자금으로 헌납하고 의진에 합류하였다. 민종식(閔宗植)은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이용규(李容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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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선(趙秉璇)[1844~1934]은 1844년 3월 15일 부여군 옥산면 내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홍산면 장터에서 혈서로 작성한 현수막을 들고 단독으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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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순(曺秉順)[1911~1935]은 1911년 7월 10일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태어났다. 1931년 봄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命愚)·유기섭(柳基燮) 등과 함께 부여군 홍산면에서 사회주의를 보급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펼칠 것을 목적으로 농민조합을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취체가 심하여 중단하였다. 이후 전영철(田泳哲)·강도형(姜道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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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철(曺秉哲)[1908~1950]은 1908년 2월 14일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태어났다. 1931년 봄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命愚)·유기섭(柳基燮)·장창선(張昌善)·오기영(吳麒泳) 등과 함께 사회주의 보급 및 항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홍산면에서 농민조합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취체가 심하여 농민조합 조직은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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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원상(趙元祥)[1858~1925]은 1858년 4월 16일 부여군 부여읍 왕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 부여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하루 전인 3월 2일 김태호(金泰昊)는 천도교 논산교구에서 「독립선언서」 40매를 받아 와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 등과 배포 방법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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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중구(趙重九)[1880~1942]는 1880년 1월 14일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일제의 국권 침탈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1914년 5월 서간도 합니하(哈泥河)에서 김창식(金昌植)·강봉주(姜鳳周)·윤이병(尹履炳) 등 1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광제회(光濟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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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0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산시장에서 발생한 일본인 타살 사건. 1919년 홍산시장 일본인 타살 사건은 1919년 10월 부여군 홍산면 홍산시장에서 일본인 다무라[田村]가 총기 오발 사고로 주민에게 치명상을 입히자 주민 100여 명이 다무라를 홍산시장에서 폭행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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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병림(千炳林)[1896~1943]은 1896년 8월 6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서 태어났다. 1932년 10월 25일 재중국 조선독립운동 각 단체가 대일통일전선을 목적으로 조직한 한국 대일전선통일동맹에 의열단 대표로 참가하였다. 1935년 7월 5일 결성된 민족혁명당 중앙검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5년 9월 25일과 26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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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병만(千炳萬)[1910~1975]은 1910년 4월 21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서 태어났으며, 천봉출(千鳳出)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조선의열단의 핵심 인물인 천병림(千炳林)의 동생이며, 천병림의 지령에 따라 조카 천경(千璟)과 천용구(千龍九), 김종대(金種大) 등 3명을 난징[南京]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보내 2기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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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민족운동. 3·1 운동 이후 일제는 기존의 통치 방식과는 다른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식민 통치의 기조를 바꾸었다. 이에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각종 운동 단체를 조직하며 청년운동에 나섰다. 청년들은 각 군면 단위로 청년 수양 단체를 결성하였고, 야학과 생활 개선, 강연회와 토론회 등의 문화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부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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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규석(崔奎錫)[1858~1923]은 1858년 8월 1일 충청남도 보령군 주포면 주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김종석(金種錫), 박성요(朴性堯), 황우열(黃宇烈), 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고, 10매를 부여면 구교리[현 부여읍 구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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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철(崔容澈)[1885~1949]은 1885년 2월 7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정판동(鄭判同)·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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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교철(秋敎哲)[1885~1951]은 1885년 5월 9일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7월 이범진(李範鎭) 등과 독립애국단을 조직하여 충남특무직을 맡았다. 상해임시정부와 연결되어 군자금 모금 지령을 받고 이기춘(李起春)의 집에 침입하여 금품 모집 활동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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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병갑(秋炳甲)[1903~1976]은 1903년 8월 14일 태어났다. 본적은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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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성배(秋聖培)[1901~1927]는 1901년 2월 11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추성배는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김종갑(金鐘甲)·서삼종(徐三鍾)·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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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한기안(韓基安)[1889~1907]은 1889년 부여군 초촌면 세동[현 세탑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전국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났고, 예산(禮山)과 부여 홍산(洪山)에서도 민종식(閔宗植)을 중심으로 홍주의진이 결성되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이후 점거하고 있던 홍주성이 함락되자 의병들은 충청남도 각지로 분산하여 의병 항쟁을 이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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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낙산(韓樂山)[1915~?]은 1915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서 태어났다. 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 있는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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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한사용(韓四用)[1889~1907]은 1889년 부여군 초촌면 세동[현 세탑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전국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났고, 예산(禮山)과 부여 홍산(洪山)에서도 민종식(閔宗植)을 중심으로 홍주의진이 결성되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이후 점거하고 있던 홍주성이 함락되자 의병들은 충청남도 각지로 분산하여 의병 항쟁을 이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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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한성수(韓聖數)[1860~1907]는 1860년 부여군 초촌면 세동[현 세탑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전국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났고, 예산(禮山)과 부여 홍산(洪山)에서도 민종식(閔宗植)을 중심으로 홍주의진이 결성되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이후 점거하고 있던 홍주성이 함락되자 의병들은 충청남도 각지로 분산하여 의병 항쟁을 이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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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한학삼(韓學三)[1865~1907]은 1865년 부여군 초촌면 세동[현 세탑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전국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났고, 예산(禮山)과 부여 홍산(洪山)에서도 민종식(閔宗植)을 중심으로 홍주의진이 결성되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이후 점거하고 있던 홍주성이 함락되자 의병들은 충청남도 각지로 분산하여 의병 항쟁을 이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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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있던 학생 단체. 합송학우친목회(合松學友親睦會)는 1924년 8월 5일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의 학생들이 창립한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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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환(許煥)[1900~1934]은 1900년 부여군 양화면 초왕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삼봉(三峯)이다. 임천보통학교와 양정학원을 졸업한 뒤 고향에서 금계청년회(金鷄靑年會)를 조직하고 야학을 경영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양화면 입포리와 임천면 장터 등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1923년에는 만주를 거쳐 상해임시정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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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 해방 직후 부여군은 좌우의 대립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대립은 6·25 전쟁을 통하여 더욱 악화되었다. 부여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사회 기반 시설이 조성되고 농지 조성이 안정화되어 농업 생산력이 높아졌다. 주민의 삶의 질도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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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있던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를 위하여 활동한 단체. 형평사 부여지회(衡平社 扶餘支會)는 부여 지역 백정들의 신분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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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홍산에 설립된 금융조합. 홍산금융조합(鴻山金融組合)은 1907년 11월 5일 충청남도 홍산에 설립된 금융조합이다. 1907년부터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주도로 전국 각지에 금융조합이 설립되었는데, 1907년 5월 30일 「지방금융조합규칙」의 공포와 함께 조합 설립에 착수하였다. 금융조합 설립 방침에 따라 조합은 1개 군 또는 여러 개의 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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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던 수리 조합. 홍산수리조합(鴻山水利組合)은 금강 수계의 잦은 범람에 대비하여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지역의 수리 사업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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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립된 계몽운동 단체. 홍산청년회(鴻山靑年會)는 1916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이다. 유지 집단의 사교 모임이자 최초의 계몽적 성격의 친목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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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대(洪淳大)[1888~1962]는 1888년 3월 14일 부여에서 태어났다. 1906년 3월에 봉기한 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흩어졌던 홍주의진이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재봉기할 때 홍순대는 의진에 가담하여 5월 11일 좌군관에 임명되었다.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이용규(李容珪)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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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조직된 공산주의 비밀 결사. 화성당(火星黨)은 1931년 1월 조직된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대표적인 공산주의 비밀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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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금채(黃金彩)[1889~1949]는 1889년 3월 28일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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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우경(黃宇京)[1875~?]은 1875년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금채(黃金彩)·박성요(朴性堯)·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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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우열(黃宇烈)[1854~?]은 1864년 1월 10일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김종석(金種錫), 박성요(朴性堯), 최규석(崔奎錫), 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았다. 「독립선언서」 5매를 받아 3월 3일 새벽 부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