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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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산군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김산 향안(金山鄕案)」은 1861년(철종 12) 양사당[조선 후기의 사숙(私熟)]을 중수하던 중 대들보에서 발견된 것이다.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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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서 정승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정승바위 이야기」는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김씨 부인의 욕심으로 인하여 연못에 소금을 뿌리고 정승바위를 깨뜨려 학을 쫓아냄으로써 명당을 파손하여 집안을 망하게 했다는 풍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정승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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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례현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향안이 정확히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각 지방에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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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광동(廣洞)의 ‘광(廣)’자와 곤천(坤川)의 ‘천(川)’자를 따서 광천(廣川)이라 하였다.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광천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광천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광천리가 되었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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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대양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대양교회는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교회’를 슬로건으로 하여 감문면 지역 포교를 위해 설립되었다. 대양교회의 역사는 김천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아포읍송천교회 신자인 이씨 부인이 개령면 오송동으로 시집와 1900년대 초 자신의 집에서 마을 신자들을 모아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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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도촌(道村)의 ‘도(道)’자와 신평(新平)의 ‘평(平)’자를 따서 도평동(道平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성주군 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소용(沼龍)·후평(厚坪)·평산(坪山)·도촌, 조마면 신평이 통합되어 김천군 감천면 도평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도평1동·도평2동으로 분동되었고, 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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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거주하는 연일정씨 가문의 예법. 봉계동 연일정씨 문중가례는 노론계의 영향을 받은 봉산면의 연일정씨 문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예법을 말한다. 1991년 연일정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가례[관·혼·상·제]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김천민속지』에는 「연일정씨 문중의 가례」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의 집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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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예지리·신리[봉계동] 3개 마을에 거주하는 창녕조씨 가문의 가례(家禮). 1990년 당시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강사 이기태가 창녕조씨 집안의 가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1991년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김천민속지』에 「창녕조씨문중의 가례」라는 글을 실었다. 봉계의 창녕조씨 가례는 혼맥과 정관계의 인맥을 통해 예부터 노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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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지역을 흔히 사통팔달의 교통 도시라고 한다. 김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를 중심으로 성주 일대의 가야, 상주의 사벌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주변 소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성장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서기 2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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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인 북성(北星)의 ‘성(星)’자를 따서 성촌(星村)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북성·명천(明泉)·명창(命昌)이 통합되어 김천군 곡송면 성촌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성촌동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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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여권 처 성주이씨의 효열각. 성주이씨(星州李氏) 부인은 함양인 오여권에게 시집가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남편이 병들자 백방으로 간호하는 한편 자기 목숨을 대신해 달라고 하느님에게 빌었으나 보람 없이 사망하자 삼종지예(三從之禮)의 부도를 좇아 스스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성주이씨는 병자호란 때 백의종군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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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개령(開寧). 자는 우춘(遇春), 호는 수호자(垂胡子).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임재광이며, 서자로 태어났다. 임기(林芑)는 학문에 특출한 자질을 보였다. 영민하고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으며 관상도 잘 보았다. 부모상을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와 남학(南學)과 동학(東學)에서 역관의 공부를 하였다. 한리학관(漢吏學官)으로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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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서룡(鄭瑞龍), 자는 인보(仁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乃臣)이다. 정유한(鄭維翰)[1568~1640]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다. 13세에 시구(詩句)를 맺을 줄 알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나서 일어서지를 못할 때 삼촌과 함께 병간호에 치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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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찰방 이대유(李大有)이다. 정유한(鄭維翰) 처 이씨(李氏)[1570~1597]는 14세에 영일 정씨 집안의 정유한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예모 있는 행동거지로 집안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8일, 왜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쫓겨 충청북도 괴산에서 흑운산(黑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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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김천 지역의 열녀. 이씨의 남편 정준혁(鄭俊赫)은 혼인 전부터 시름시름 앓아 몸이 약해 결혼식도 겨우 치를 정도였다. 결혼한 며칠 후 아직 친정에 있던 이씨는 남편의 부음 소식을 듣고 말았다. 이씨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의 봉양을 위해 차마 죽을 수 없었다.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시부모 앞에서 자신까지 죽는다면, 남편에게는 열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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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할 당시 일대에 억새풀이 많아 초곡(草谷) 또는 초실(草室)이라 하였다. 우리말로는 샐 또는 세실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과거 김천 지역에서 사투리로 억새풀을 새 또는 샐이라고 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선 말 개령군 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초곡·서원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초곡동으로 개편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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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李謁平) 을 시조로 하고 이연욱(李挻彧)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합천이씨의 시조는 신라 6촌(村)의 하나인 양산촌장 이알평으로 유리왕(儒理王) 때 양산부로 고치고 이씨(李氏)를 사성(賜姓)하였다. 중시조는 이알평의 39세(世) 이개(李開)가 강양군(江陽君)에 봉군되고 조선 태종 때 강양(江陽)이 합천으로 개칭되어 뒤에 본관을 합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