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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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터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세를 지니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양파 밭이 펼쳐져 있고, 마을 뒤쪽으로는 응봉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최씨담’이라 불리는 못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감천’이, 옆으로는 ‘올뱅이도랑’이라 부르는 하천이 흘러서 왜가리 등 철새들이 서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곳이다. 그리하여 원터마을에는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전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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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현재 구성면을 비롯해 인근 5개 면의 주요 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양파다. 이 양파를 김천 지역에서 처음 재배한 사람이 이민화(李玟和) 씨다. 이민화 씨는 1950년대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후 원터마을로 귀향해서 시험적으로 양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성면에는 양파 작목반이 있는데, 300여 호가 가입되어 있는 ‘구성양파작목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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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수[1961년생] 씨는 6남매 중 넷째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원터마을은 교통도 불편하고 토질도 좋지 않아 먹고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동네였다. 부모님께서는 마을의 산을 개간하여 누에를 먹였다. 나락농사는 양식을 하는 정도였고, 양잠을 통해서 겨우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양잠을 통해서 6남매를 제대로 교육시킬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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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은 3·1운동 이후인 1920년 9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비밀리에 조직되어 1922년 일제 관헌 당국에 탄압을 받을 때 까지 활동한 독립 운동 단체이다. 주요 활동은 독립 운동 자금과 독립 운동 활동가를 모집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주요 인물은 김찬규(金燦奎)·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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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이거나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미국 등 열강들의 후원 속에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위정척사 계열의 유생들은 상소 운동과 의병 항쟁으로, 개화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섰다. 이명균,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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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차례씩 태풍이 지나가며 크고 작은 피해를 초래했지만, 특히나 1936년 병자년 수해와 2002년의 태풍 ‘루사’는 김천 지역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1936년 8월 27일 태풍 통과 권역에 속했던 김천 지역은 감천이 범람하면서 사방 천지가 물바다로 변했고, 산사태마저 겹쳐 피해가 더욱더 심하였다. 구성면의 경우에는 광명리의 피해가 심했는데, 이는 원터마을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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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상원리 원터마을에 자리한 마을회관이 사람들로 북적하다. 2010년 7월 19일 초복을 맞아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삼계탕과 수박을 먹기 위해서다. 원터마을 부인회장 이순옥[1959년생] 씨는 이른 아침부터 닭을 삶기 위해 마을회관 앞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때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언제 모여서 함께 밥을 먹습니까. 요때 모여가 우리 마을에 있는 어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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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여름 따가운 햇볕이 쏟아오는 한낮 김천역에 들어섰다. 김천역 내부 공사 때문에 먼지가 더운 바람과 함께 불어댄다. 조사자는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이란 목적지는 있지만 교통수단을 이용해 가는 방법을 정확히 몰라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아저씨, 상원리 원터마을 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우선 타소. 여기서 시내버스터미널에 가서 갈아타야 해.” 버스를 탄 지 3분도 채 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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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경(漢卿)[또는 漢京], 호는 성석(醒石). 족보의 이름은 이필화(李弼和)이다. 아버지는 이상영(李象榮)으로,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16세에 아버지의 막내 동생 이상일의 양자로 들어갔고, 22세가 되던 1873년 벽진 이씨 이승렬의 딸과 혼인하고 7년 만에 외아들 이응수(李應洙)를 낳았다. 이건석(李建奭)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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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균(李明均)[또는 李銘均]은 186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조선 성종 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충간공 이숭원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일괴(一槐)이다. 가학(家學)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절치부심하던 이명균은 대한광복회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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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응수(李應洙)는 1879년 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번지에서 일제 침략에 상소 운동으로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성석(醒石) 이건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국권을 찾지 못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이응수는 3·1운동 때는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5개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