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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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이자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회숙(會叔), 호는 은재(隱齋). 안동 권씨 문경공 권진(權軫)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권흠(權欽)이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권응성(權應聖)[?~1592]이고, 아들은 권기(權耆)이다. 권기는 예빈시첨정을 역임하였다. 권응기(權應期)는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형 권응성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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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부터 광복 이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김천은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혁에서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은 모두 군으로 되었고, 1905년 증산면이 성주군에서 지례군으로, 다음 해에 성주군 신곡면(薪谷面)과 황간군(黃澗郡) 남면이 김산군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개령군·김산군·지례군이 김천군으로 통폐합되었다.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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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숙자(金叔滋)로부터 학맥을 이어받은 김종직(金宗直)은 58세 때인 1489년(성종 20)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아내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임지[개령현감] 따라 면학하던 곳이요, 아내와 아들 김목아(金木兒)가 묻혀 있어 가장 애착이 가는 김천의 백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서당인 경렴당(景濂堂)을 짓고 평소 공부하던 경서(經書) 등 천 권의 서책을 옮겨 학문 강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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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속하는 법정동. 조선 시대 천민 계층의 집단 거주지인 굴곡부곡(屈谷部曲)이 있던 지역으로 부촌을 만들자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부곡동이라 하였다. 1914년 김산군 김천면 원동[원골], 김천군 금릉면 부곡동·모지동[문지알]·신기동이 통합되어 금릉면 부곡동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 김천읍 부곡동이 되었고, 1949년 김천시 부곡동이 되었고,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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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독립운동가. 송준필(宋浚弼)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순좌(舜佐), 호는 공산(恭山)이다. 186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송홍익으로부터 한학의 기초를 익혔고, 17세에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강회에 참석하였다. 이후 30세까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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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맹영(宋孟英)을 시조로 하고 송준필(宋浚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야성은 야로의 별호인데 야로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 때 적화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야로로 고쳤다. 시조인 송맹영은 고려 목종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야성군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야성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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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김천시의 역사. 김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甘文國)과 주조마국(走漕馬國)이 있었고 삼국 시대에는 신라가 감문국과 주조마국을 병합하여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던 곳이다. 신라 때는 김산군에 속하는 산간 촌락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에 역마제도가 생긴 이후 인근 주민들의 물물 교환 및 주변 지역과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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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에 송준필(宋浚弼)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 송준필은 이진상(李震相)의 강학에 참석하였고, 18세 때부터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배웠다. 뒤에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배우기도 하여, 당시 영남의 석학들과 폭넓게 교제하며 수학하였다. 그는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제6도를 심화시킨 『심통성정삼도발휘(心統性情三圖發揮)』(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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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전개된, 공자를 존신하는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인(仁)을 도덕의 최고 이념으로 삼는 학문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 시대 이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에 태학(太學)이 설립되고,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논어(論語)』, 『천자문(千字文)』을 전하며 신라에 국학이 건립된 것이 바로 이 점을 말해 준다. 고려 때에는 태조 왕건이 불교를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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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사. 유진성(兪鎭成)은 1879년 경상북도 금릉군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에 입교한 유진성은 1911년 김천군 지례면[현 김천시 지례면]에 있는 파천교회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1916년경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예수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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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오, 호는 계헌(稽軒). 아버지는 이규성이다. 이경균(李璟均)[1850~1922]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태어났다. 고헌 정내석과 사미헌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도학을 공부하였으며, 효행으로 누차 사림의 천거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로 유림 대표 137명의 연서로 파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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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여, 호는 해재(海齋). 아버지는 이유(李遊)이다. 집안이 대를 이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사세 학행, 사세 유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유도 형 이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잠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 대에 학행으로 안음현 훈도에 제수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 이지남[자 성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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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은 1862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639번지에서 한학자인 남애(南厓) 최창락(崔昌洛)[1832~186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익길(崔益吉) 또는 최학광(崔鶴光)으로도 불렸다. 18세에 아버지 최창락을 따라 성재(性齋) 허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족형인 양오(陽梧) 최봉길(崔鳳吉)[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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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김천 지역의 충신을 기록한 자료로는 『품천지(品川誌)』,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등이 있다. 김천 지역의 충신을 유형별로 나누면 조선 개국에 항거하거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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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김천 출신을 비롯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사건.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림 세력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내세워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 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